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을 앞두고 내년 저탄소화 사업 등에 12조원의 재정을 투입하기로 한 가운데 산업계에서도 수소 관련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 찍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번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주축이 된 '한국판 수소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수소 관련 이벤트가 잇따르며 수소 사회 구현을 위한 발걸음도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작년 발표한 리포트에서 세계 수소 시장이 2050년까지 12조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기업도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수소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를 양산했으며, 2030년까지 연간 수소전기차 50만대,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70만기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수소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충전소 설치 등에 11조 1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의선 회장은 "수소는 탄소 중립 시대의 '에너지 화폐'"라며 포스코, SK 등 국내 주요 그룹과 수소 관련 사업 협력에도 힘을 싣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7일 온라인으로 '하이드로젠 웨이브' 행사를 열고 23년간 축적한 핵심 수소 기술과 미래 수소 사업 전략, 미래 수소모빌리티와 차세대 연료전지 시스템 등 그룹의 수소 관련 역량을 총망라해 선보일 계획이다.
SK그룹은 작년 말 수소 사업 전담 조직인 수소사업추진단을 신설했으며, 국내 수소 생태계 구축을 위해 5년간 18조 5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2025년까지 수소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가치사슬(밸류체인)을 구축해 글로벌 1위 수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SK는 SK인천석유화학의 부생수소를 활용해 2023년부터 약 3만톤(t) 규모의 액화 수소를 생산하고, 2025년부터는 친환경 청정수소 25만t을 추가로 생산하는 등 총 28만t 규모의 수소를 생산할 예정이다.
작년 12월 수소산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포스코그룹 역시 2050년까지 수소 생산 500만t 체제를 구축하고, 수소 사업에서 매출 3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수소를 활용한 철강 생산 기술인 수소환원제철공법 연구, 수소를 생산·운송·저장·활용하는 데 필요한 강재 개발, 부생수소 생산설비 증대 등을 통해 수소 생산 역량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효성그룹은 수소 생산부터 공급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효성은 독일 산업용 가스업체 린데그룹과 합작해 2023년까지 효성화학의 울산 용연공장 연산 1만 3천t 규모의 부지에 액화수소 공장을 건설한다.
효성중공업은 5년간 1조원을 투자해 액화수소 생산 능력을 3만9천t까지 늘린다. 액화수소 충전 인프라도 구축할 예정이다. 효성첨단소재는 2028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해 전주 탄소섬유 공장을 확대, 연산 2만 4천t의 탄소섬유를 생산한다. 이 탄소섬유는 수소차의 연료탱크나 압축천연가스(CNG) 고압용기 생산에 쓰일 예정이다.
한화그룹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하는 그린수소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한화솔루션 수소기술연구센터는 전력 소모가 많은 기존 수전해 기술의 단점을 보완한 차세대 '음이온 교환막 수전해 기술(AEMEC)'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고압탱크 업체 시마론도 인수했다.
한화종합화학은 최근 한국서부발전과 협약을 맺고 국내 최초로 수소혼소 발전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LNG에 50%이상 수소를 혼소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폭 감축시킬 수 있게 된다.
이들 5개 그룹사가 2030년까지 수소 경제에 투자하는 금액은 총 43조원 규모다.
이외에 GS칼텍스도 한국가스공사, 한국동서발전과 함께 액화수소 공장과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 구축에 나섰다.
2024년 완공 목표인 액화수소 공장은 LNG 인수기지의 기화 공정에서 발생돼 버려지던 LNG 냉열을 에너지로 함께 사용한다. 수소 연료 전지 발전소는 GS칼텍스 여수공장에서 생산되는 부생수소를 공급받아 산소와의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게 되며, 부산물로는 순수한 물만 생산된다.
두산중공업은 2022년 완공을 목표로 창원 공장에 건설 중인 수소액화플랜트에서 고효율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적용해 블루 수소를 생산할 예정이다. 차세대 원전인 소형 모듈 원자로(SMR)를 활용한 청정수소 생산도 검토 중이며,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수소 가스터빈 개발에도 착수했다.
코오롱은 글로벌 점유율 1위의 수분제어장치를 비롯, 국내 유일 막전극접합체(MEA)와 고분자전해질막(PEM)을 동시에 생산하는 기술력을 기반으로 향후 수소 시장에서 핵심 소재 통합솔루션을 제공한다는 포부를 내걸었다. 2030년 수소 관련 사업매출 1조원 달성이 목표다.
한편 정 회장과 최 회장 등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총출동하는 수소기업협의체는 8일 '2021 수소모빌리티+쇼'가 열리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H2비즈니스서밋'을 열고 공식 출범한다.
수소모빌리티+쇼에는 국내외 수소 관련 기업 150여곳이 참가해 나흘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와 수소 트램 등 수소 동력 기반 모빌리티와 수소 인프라, 수소에너지 등 수소 산업 관련 최신 기술을 한 자리에서 소개한다.
정부도 수소 인프라 확대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을 개정해 국·공유지 내 수소충전소 구축 시 임대료 감면 한도를 50%에서 80%로 늘리고 개발제한구역 내 수소충전소 이외의 수소생산시설, 출하 설비 등 다양한 수소 인프라 설치도 허용했다.
그린수소 인증제와 액화 수소·액화 충전소 보급 계획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되는 '수소경제로드맵 2.0'도 연내에 발표될 예정이다.
김다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정부 정책 노선이 수소 인프라 확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하반기부터는 수소 산업의 성장을 저해했던 인프라 부족 문제가 점차 해소될 전망"이라며 "수소 인프라 확충이 우선 뒷받침되면 향후 수소 정책 모멘텀에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