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수 성향 주(州)들이 낙태를 사실상 금지한 텍사스주를 모방한 주법 마련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연방대법원이 지난 1일(현지시간) 텍사스 주법 시행을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법 시행의 길을 튼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아칸소, 플로리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사우스다코다 등 최소 7개 주에서 공화당 인사들이 텍사스 주법을 반영해 주법을 검토하거나 개정할 것임을 시사했다. 켄터키, 루이지애나, 오클라호마, 오하이오 등 더 많은 주도 이를 뒤따를 것이라고 WP는 전했다.
문제의 텍사스 주법은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사실상 금지했다. 이는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인 임신 23~24주 이전에는 낙태가 가능하다고 한 1973년 1월 대법원의 '로 대(對) 웨이드' 판례와 배치된다.
하지만 텍사스는 불법 낙태 단속의 주체를 주 정부가 아닌 시민으로 규정함으로써 이 판례의 적용을 교묘하게 피해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낙태 시술 기관이나 옹호론자 입장에선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것이 힘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 법 시행으로 인해 긴급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가처분 기각 결정문에서 시민들이 이 법에 따라 소송에 나설지 분명하지 않다면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임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 이유를 밝혔다.
다만 대법원 결정은 시행 금지를 요구한 가처분 신청에 대한 기각이지, 텍사스 주법 자체의 합헌성에 대한 판단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 본안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적시해 이후 법 자체의 위헌성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지금까지 낙태 금지와 제한을 주장해온 공화당에서는 기존 판례를 피해갈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좀 더 의미 있게 텍사스 법을 들여다보겠다고 했고, 플로리다 주상원 의장인 윌턴 심슨은 텍사스 주법 모방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티 노엄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도 텍사스 주법에 대한 즉시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고, 아칸소 주의회의 제이슨 레퍼트 상원 의원 역시 비슷한 법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낙태권을 지지해온 단체들과 민주당은 강력히 반발하며 논란은 확산하는 형국이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여성 행진'이라는 단체가 다음 달 2일 50개 주 전역에서 텍사스 법에 항의하기 위한 집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집회에는 여성권과 낙태권 옹호를 주장해온 90여 개 단체가 함께 참여해 세 대결에 나선다.
민주당은 낙태권 보장 법안을 처리해 텍사스 주법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하지만 민주당이 다수석인 하원을 통과하더라도 상원 의석이 50대 50이어서 공화당 반대로 무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 "여성의 헌법적 (낙태) 권리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라고 연일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과 관계 부처에 범정부적 대응책 마련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