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 "안 맞는 구두는 신지마"…연극 '신데렐라'

아트리버 제공

지난 2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개막한 연극 '신데렐라'는 동화 '신데렐라'를 유쾌하게 비틀었다.

연극의 설정이 참신하다. 신데렐라는 무도회에서 유리 구두가 아닌 빨간색 가죽 구두를 신었고, 무도회장을 급히 떠나야 해서가 아니라 구두가 발에 맞지 않아서 구두 한 쪽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이 연극의 출발점이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무대 정중앙에 놓인 빨간 구두가 눈길을 잡아끈다. 연극은 빨간 구두의 주인을 찾기 위한 여정을 21가지 에피소드로 풀어낸다. 김화영, 강애심, 박소영이 에피소드마다 각양각색 캐릭터로 변신해 빨간 구두에 얽힌 이야기를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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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빨간 구두의 원래 주인은 여배우다. 여배우는 아버지로부터 구두를 선물받지만 발에 맞지 않아 친구에게 선물로 준다. 그러나 친구 역시 구두가 발에 들어가지 않자 임산부 언니에게 건넨다.

말 그대로 '주인 찾아 삼만리'다. 배우, 임산부의 손을 거친 빨간 구두는 시인, 학생, 엄마와 딸, 노파 등 여러 인물을 만나지만 그 누구도 이 구두를 소유하지는 못한다.

빨간 구두는 저마다 간직한 욕망을 상징한다.

한 쪽 다리를 절단해 더 이상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없다고 낙담하는 여자, "빨간 구두를 선물받았지만 양말 다섯 켤레를 신어야 맞는다"며 한숨 쉬는 톨게이트 검표원, 이별을 앞두고 선물받은 빨간 구두를 보며 울음을 터뜨리는 여자, 과감하게 빨간 구두를 신고 짝사랑하는 남자 앞에 섰건만 이내 남자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실망하는 여자 등 여러 인물의 욕망을 표현한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간결하면서 강렬하다.

극의 마지막 장면. 빨간 구두가 주인을 찾아 헤매는 사이 왕자는 죽음을 맞았고, 노파는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빨간 구두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린 뒤 총총 발걸음을 옮긴다.

"맞지 않는 구두에 발을 억지로 맞추는 건 괴로워. 그런 인생은 괴로워. 안 맞는 건 신지 마. 그래야 인생이 편하지. 넌 신데렐라를 찾아 헤매겠구나. 그래, 너 운명이라면 잘 가거라."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극작가 이강백이 3년 만에 발표한 신작이다. 묵직하면서도 세련되게 동시대와 호흡하는 원로 작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소품과 의상에 변화를 줘 시시각각 다양한 캐릭터를 오가는 세 배우의 연기가 일품이다. 베테랑 김화영·강애심은 물론 오디션에서 275대 1 경쟁률을 뚫은 박소영의 열연이 눈에 띤다. 9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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