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헬기로 30분 남짓 가야 하는 동해 바다. 취재진이 탄 UH-60 블랙호크 헬기 창문 너머로 군함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함정보다 유달리 커 보이는 HMS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비행갑판 뒤쪽으로 접근하던 헬기가 살짝 내려앉더니 문이 열렸다.
비행갑판 앞쪽 스키점프대 옆으로 가 따로 마련된 공간에 섰다. 헤드셋 너머로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시동을 걸기 시작하던 F-35B 전투기가 조종석 뒤 리프트팬을 열더니, 노란색 조끼를 입은 승조원이 앉으면서 신호를 주자마자 가속해 스키점프대를 타고 이함했다. 5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취재를 위해 서 있던 기자들 사이로 바람이 몰아쳤다.
취재진은 하루 동안 한영연합 해상기회훈련이 열렸던 지난달 31일 동해상에 있는 영국 해군 항모전단을 직접 찾아 F-35B 전투기 이함을 지켜보고 지휘관들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영국, 남북한 모두와 외교관계…남중국해에선 중국 잠수함이 항모 미행
우리 영해에 도착한 전단은 본래 부산항에 기항하려 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러지 못하고,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울산 동쪽 바다에서 머무르며 31일에 한국 해군 독도함 등과 연합훈련을 벌였다. 26일까지 진행됐던 한미연합훈련이 막 종료된 직후이기도 하다.
영국은 우리 우방국이자, 서방 국가 가운데 북한과 수교하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런던에는 북한대사관이 있고 평양에도 영국대사관이 있지만 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문을 닫았다. 항모전단은 해당 나라가 가진 군사력을 보여줄 수 있는 현시(show of force) 효과를 지닌 만큼, 이런 국제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항모전단이 한국을 찾은 일 또한 많은 주목을 끌었다.
국방부 부승찬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해군과 영국 항모전단은 한국과 영국의 훈련지휘관을 각각 임명해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탐색·구조훈련과 해상 기동군수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면서도 "미국을 비롯한 타국 전력이 항모전단 구성요소로 일부 편성되어 있지만 이번 한영 연합훈련에는 참여하지 않으며, 타국 전력과 이번 훈련에 대해 별도 합의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英 지휘관들 "현대 항모전단 운용은 '5차원 체스'…통합성과 상호운용성이 포인트"
그는 취재진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예를 들어 우리가 서로 쓰는 휴대전화 제조사가 다르면 이를 상호 운용할 수 있는지, 각자가 가진 화면이 같은지, 정보를 매우 빠르게 주고받아서 같은 내용을 각자 기기에서 확인하고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며 "진행 중인 훈련들은 서로 소통이 명확히 이뤄지고, 데이터 공유가 올바르게 이뤄지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말인즉슨 전력 하나하나가 지닌 전투력도 중요하지만, 현대 해군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종합적으로 놓고 보면 각 배가 지닌 전투력을 어떻게 통합해 운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취지다.
무어하우스 전단장은 "훈련 시나리오 자체는 간단하지만, 데이터와 디지털을 동시통합하는 과정은 훌륭한 해군들만 할 수 있는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며 "예를 들어 한국 구축함이 잠수함을 발견하고도 우리에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상호 운용성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항모전단 운용에서 어려움은 마치 체스에 비유할 수 있는데 수중, 수상, 공중, 우주, 사이버 영역에서 두는 5차원 체스와도 같다"며 "게다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함께 훈련을 통해 서로 업무를 더 잘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미군이 최근 발전시키고 있는 작전개념인 다영역작전(Multi-Domain Operation) 등과 맥을 같이한다.
항공전력을 총괄하는 제임스 블랙모어 항모비행단장(해군대령)도 "앞으로 진행될 훈련들이 태평양 지역에서 우리(영국)와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과 통합성, 상호운용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영국과 영국 해군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 역량을 발휘해 국제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일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영국 해군과 공군, 항모에서 동거생활…"항모, 유연성과 민첩성이 높아 더 많은 선택지 제공"
2차 대전 당시부터 해군 항공대를 대규모로 별도 편성했던 미 해군과는 다른 방식이다. 물론 그만큼 공군과 해군이 손발을 맞출 수 있는 능력, 즉 합동작전능력을 더 강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블랙모어 비행단장은 실제로 2008년에 공군에 파견을 가 비행대장을 맡은 경험도 있다고 한다.
617비행대대가 지닌 합동성 측면에 대해 그는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효율적이고 합동적인 체계"라며 "퀸 엘리자베스 또한 F-35B 전투기 지원에 특화돼 설계됐고, 첨단 스텔스기 운용에 필요한 체계도 잘 갖춰져 있다"고 했다.
퀸 엘리자베스는 길이가 284m, 폭이 73m다. 승조원 1600명이 탈 수 있고 F-35B 36대를 비롯해 대잠헬기와 수송헬기도 모두 탑재할 수 있다. 다만 항공전력은 항공기 숫자가 아니라 출격횟수(소티)로 계산하는데, 퀸 엘리자베스는 하루 72소티가 가능하다고 한다.
항공모함은 중국이 반(反)접근·지역거부(A2/AD) 일환으로 실전배치한 대함탄도미사일(ASBM) 등으로 인해 이른바 '쉬운 목표'가 된다는 반대론도 최근 만만치 않다. 다만 블랙모어 비행단장은 이를 딱 잘라 일축했다.
"지상기지는 적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지만, 항공모함은 24시간 동안 600해리(1100km)를 이동할 수 있어 민첩하고 유연하다"며 "기지를 구축하고 이 곳에 드나들기 위해 다른 나라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무어하우스 전단장도 "항공모함은 유연성과 민첩성이 매우 높다. 선택에 따라 더 많은 전투기와 헬기를 운용할 수 있고, 인도주의나 재난구조 작전을 할 수도 있다"며 "다방면으로 운용이 가능해 정치인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론 무인기(드론) 시대가 다가오면서 유무인 복합체계(MUM-T) 등 개념이 주목받기도 하고, 더 먼 미래에는 아예 자율비행 무인기로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영국 해군이 어떻게 보는지를 묻자 블랙모어 비행단장은 "모두가 무인 항공기가 가져올 미래 기술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험성이 높은 임무 등 무인 항공기가 더 효율적인 부분도 확실히 있다"면서도 "지금 당장 바뀌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 조종사들이 10~20년 동안은 더 비행하겠다고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F-35가 향후 30년 동안은 더 운용되기에 무인과 유인 항공기 능력을 통합하는 일이 주력이 되리라고 본다"고 예상했다.
크기는 경항모 1.5배인데 재래식 추진에 스키점프대…우리 해군 시사점은?
이 점도 한국 해군 경항공모함 계획과 비슷하다. 물론 크기는 퀸 엘리자베스 쪽이 경하배수량 6만 5천톤에 만재배수량 7만 2천톤으로,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경항공모함(경하배수량 3만톤급, 만재배수량 4만 5천톤 이상으로 예상)보다 1.5배 정도 크다.
블랙모어 단장은 "퀸 엘리자베스에는 가스터빈 엔진 2개와 디젤 엔진 4개가 달려 있어 이를 통해 전력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프로펠러와 함내에 동력을 공급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추진방식도 그렇고 항공모함 자체도 비교적 전통적인 무기체계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무어하우스 전단장은 "이런 항모는 전혀 전통적(traditional)이지 않다. 항모 바닥부터 갑판까지 모두가 F-35B를 운용하기 위해 디자인되어, 5세대 항공기를 운용하기 위한 5세대 항모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항공기 탄약은 관리에서 운반까지 모두 자동으로, 마치 아마존 물류 시스템처럼 인력이 거의 투입되지 않는다"며 "모든 기계실 또한 원격으로 모니터할 수 있고, 통신도 3-4천 해리(5500-74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진행되는 작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부산에서 열린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에서 현대중공업은 스키점프대가 있는 설계안을 내놓아, 퀸 엘리자베스와 다소 비슷한 형상을 갖추기도 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에서 내놓은 안은 기존처럼 스키점프대가 없는 평갑판이어서 미 해군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경항모로 운용 예정)과 비슷하다.
블랙모어 비행단장은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캐터펄트가 장착돼 있지 않은 항모를 운용하길 원하고 있는데, 영국과 높은 상호 운용성을 보여줄 수 있겠다"며 "퀸 엘리자베스도 차후 캐터펄트를 설치할 수 있게 설계는 해 두었지만 현재로선 STOVL(단거리이륙-수직착륙) 방식 F-35B 운용에 집중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