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 여부를 두고 진통을 겪는 와중에 대선후보 및 직계가족 관련 재산을 검증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범야권 대선주자 중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주춤하는 사이 당내 경쟁자들은 윤 전 총장을 향한 집중 견제 나선 모양새다.
후보 및 직계가족들에 대한 재산 검증 포문은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열었다. 원 전 지사는 지난 30일 지난 10년 간 자신을 포함한 직계 가족들의 부동산, 예금 등 재산 변동내역을 '셀프 공개'했다. 표면적으론 부친의 땅 투기 의혹에 '의원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둔 윤희숙 의원의 취지를 이어가겠다고 설명했지만, 다른 당내 주자들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원 전 지사는 "고위 공직자, 특히 대선 후보의 재산 형성에 대해 국민들이 높은 수준의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약 20억원에 달하는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의 재산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최근 윤 의원 사태를 계기로 대선후보 및 가족들이 보유한 부동산에 대한 검증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지만, 지난 10년 간 재산 형성 과정까지 당 차원에서 검증하자는 점은 차원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결국 선두주자인 윤 전 총장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공직자윤리위원회 관보에 따르면 지난 3월 검찰총장 직에서 사퇴한 윤 전 총장의 재산은 총 71억 7천만원에 달한다. 문제는 재산 대부분이 배우자인 김건희씨 명의로 돼 있고, 윤 전 총장 명의의 재산은 예금 2억 4천만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복합건물(약 15억원), 예금(약 51억원) 등 나머지 약 69억원은 김씨가 형성한 재산이지만, 당내 경선에 돌입하면 윤 전 총장이 재산 형성 과정을 해명해야 하는 셈이다.
일단 대부분 당내 후보들은 재산검증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홍준표 캠프 관계자는 31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출마 선언 때부터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강조해왔다"며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가족들 전부에 대한 검증을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안상수 후보도 통화에서 "주식이든 채권이든 부동산이든 후보 검증은 지나칠 게 없다"고 했고, 최재형 캠프 관계자도 "대선 후보와 가족들에 대한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검증은 원칙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부동산 뿐만 아니라 주식이나 채권 등 다른 재산에 대해서도 형성 과정을 검증하는 건 당연하다"고 찬성했다. 다만 윤 전 총장 측 관계자는 "당내 경선이 무슨 초등학교 운동회도 아니고 여권 상대가 있는 법인데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게 어딨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재산검증 주장이 이제 막 시작했다면, '역선택 룰' 논란은 시간이 지날 수록 격화되고 있다. 정홍원 선관위원장에게 연일 공개 경고를 날린 유 전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는 순간 공정한 경선은 끝장난다"며 "경선판을 깨겠다면 선관위원장에서 사퇴하라"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전날 정 위원장이 당 경준위의 '역선택 방지 조항' 배제 결정에 대해 원점 검토를 시사한 가운데 유 전 의원과 홍 의원 캠프 등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입당 후 중도층 표심이 대거 이탈하면서 기존 보수층 지지세로 버티고 있는 윤 전 총장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정 위원장이 '역선택 룰' 개정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관위는 일단 오는 1일 각 캠프 대리인을 통해 역선택 룰 관련 대선주자들의 여론을 수렴하기로 했다. 한 선관위원은 통화에서 "전례가 없는 걸 지금 와서 바꾸기도 쉽지 않아 정 위원장도 지금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각 후보들 간 유불리가 걸린 사안이라 컨트롤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충북 지역 방문 일정 중 기자들과 만나 "주최 측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운영을 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선 룰에) 승복하고 따를 생각"이라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