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외국 거주 아동, 현지 영문 이름 국내 여권에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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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사는 한국 국적 아동의 여권 상 영문 이름 표기를 "국내 표기법이 아닌 현지에서 실제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고쳐달라"는 신청을 거부한 외교부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A(7)군의 부모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여권 영문성명 변경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외교부가 영문 이름 정정 신청을 거부한 것은 위법한 처분으로 이를 취소하고 소송 비용 또한,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대한민국 국적인 A군은 2014년 7월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한글 이름 끝 자리에는 '후'가 들어가는데 부모는 프랑스 행정기관에 A군에 대한 출생 신고를 하며 로마자로 'HOU(후)'가 아닌 'OU(우)'로 표기했다. 프랑스어는 본래 'H' 발음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A군 부모는 이후 국내에 여권을 신청할 때도 A군의 영문 이름을 프랑스에서의 출생 신고 때와 동일하게 표기했다. 하지만 당시 종로구청은 A군 부모가 신청한 아들의 표기가 국내 로마자표기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A군의 영어 이름 끝자리를 OU가 아닌 HOU로 하여 발급했다.
 
5년 후 A군 부모는 2019년 8월 'HOU'를 'OU'로 바꾸는 등 첫 신청 때 냈던 로마자 표기로 정정해달라고 다시 한번 외교부에 이름 변경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거부당했다. 외교부는 여권 상 영문 이름은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법적 이름을 '음역'에 맞게 기재해야 하고 이에 따라 '후'는 OU가 아닌 HOU라는 게 그 이유였다.
 
A군 부모는 이러한 외교부의 결정에 그해 11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여기서도 '기각 결정'을 통보받았고 이에 지난해 10월 법원에 외교부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정식 소송을 제기했다.

A군 부모 측은 소송 과정에서 아들이 출생 후 줄곧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자라 A군의 이름에 HOU가 아닌 OU를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권 상 이름과 출생 당시 이름이 달라 학교 및 공항 이용 등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점도 외교부가 이름 변경 신청을 받아들여야 하는 근거로 들었다.

반면 외교부 측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여권에 A군이 국외에서 사용하는 'HOU'가 들어간 이름도 함께 적혀 국외생활의 불이익은 최소화되는 반면 로마자 표기의 변경은 여권의 대외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A군이 제기한 소송은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법리 싸움 끝에 1심 법원은 A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군이 프랑스 및 벨기에에서 생활하며 출생 등록 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여권의 로마자 이름과 다른 출생신고시 이름을 장기간 사용하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경우로 로마자 이름을 변경하거나 정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외교부 측은 여권의 대외 신뢰도를 고려해 로마자 표기의 변경은 신중해야 한다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의 시각은 달랐다. 구체적으로 "엄밀히 말하여 여권의 대외신뢰도 관점에서 문제되는 것은 여권 상 로마자 표기 변경에 따라 외국 정부의 우리 국민에 대한 출입국심사 및 관리에 어려움을 초래하는지 여부지 여권 상 로마자 표기와 등본 상 한글 이름의 로마자 표기 일치 여부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끝으로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대한민국이 가입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도 언급했다. 단순한 국가의 위신이나 추상적인 공익만으로 개인의 정당한 요구를 국가가 거부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이름 변경사유가 인정됨에도 원고가 입을 불이익에 비해 피고가 그 신청을 거부할 수 있을 만큼의 중대한 공익이 인정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여권법 시행령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이후에도 계속하여 완고한 태도를 보여 온 외교부에 대해 국민의 영문 여권명 변경신청을 허용한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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