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까지 업계 선두 자리를 되찾겠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은 지난 7월 파운드리 사업 확장을 위한 로드맵을 공개했습니다. 퀄컴과 아마존 등 새 고객을 위해 4년 안에 1나노(nm·10억분의 1m)대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업계 압도적인 1위 대만의 TSMC 아래 인텔과 삼성전자는 일대 결전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산업(Industry)을 읽는(讀) '인더독' 시리즈, 이번에는 시스템반도체를 둘러싼 파운드리 '삼국지'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2018년 세계 2위 글로벌파운드리의 '7나노' 공정 '포기'의 의미
3년 전인 2018년 8월 27일(현지시간) 당시 세계 2위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GF·GlobalFoundries)가 7나노 공정 개발 중단을 선언합니다. GF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7나노 프로그램을 무한정 보류하고 이에 따라 인력을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GF는 2017년 6월 7나노 공정 개발에 본격적으로 진출했고, 2019년까지 대량 양산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었습니다.삼성전자와의 기술 제휴로 14나노 핀펫(FinFET) 공정 기술을 이전받은 GF는 당초 2016년 8월 10나노 공정을 뛰어넘어 바로 7나노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이미 그해 2월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D램 양산에 들어간 상황에서 단숨에 격차를 줄여야 하는 GF로서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GF가 7나노 공정을 포기한 날, 미국의 AMD는 차기작인 베가 7나노 GPU(그래픽처리장치)의 생산을 애초 예고했던 GF가 아니라 대만의 TSMC에 맡긴다고 발표했습니다. GF는 원래 2009년 AMD의 실리콘 웨이퍼 제조 부문을 기반으로 생긴 파운드리 회사입니다. 위약금 조항까지 두고 위탁 생산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주요 고객사의 '외면'은 경쟁에서 뒤처진 GF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2018년 하반기 당시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10나노 이하의 공정을 보유한 업체는 TSMC와 삼성전자 2곳 뿐이었습니다. 10나노에서 세계 최초 자리를 삼성전자에 내준 TSMC는 당시 7나노 공정을 이용한 양산에 이미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듬해인 2019년 4월 5나노 공정 개발에 성공하는 등 반도체 업계의 '초미세' 경쟁은 사실상 두 기업의 맞대결이었습니다.
인텔, 10나노 이하 공정 개발에 난항…수차례 연기 끝에 '반쪽' 성공
GF의 7나노 포기 선언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18년 10월 "인텔이 10나노 공정을 중단한다"는 소문이 미국의 IT전문지를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인텔은 즉각 트위터를 통해 "언론에 보도된 10나노 공정 포기는 사실이 아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의혹을 부인했습니다.인텔은 애초 2017년에 10나노 공정 기반의 CPU(중앙처리장치)를 출시할 계획이었습니다. 2018년 하반기로 한 차례 밀리더니 2019년 상반기로 다시 출시를 연기한 상황에서 흘러나온 '철수설'은 초미세 공정 개발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인텔은 이처럼 차세대 공정 이행에 난항을 겪으면서 2018년 파운드리 시장에서 공식 철수했습니다. 인텔은 2013년 2월 FPGA(Field-Programmable Gate Array·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반도체) 설계 업체인 아크로닉스로부터 위탁받은 22나노 칩 샘플을 출시하며 삼성전자처럼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종합반도체회사)이면서 동시에 파운드리를 별개로 운영하는 사업 모델로 진화하길 꿈꿨습니다.
인텔은 2016년 8월에는 영국의 ARM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LG전자와 10나노 모바일 시스템온칩(SoC)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합니다. ARM은 현재도 스마트기기의 두뇌 격인 AP의 90%가량을 차지하는 독보적인 설계 회사입니다. 하지만 인텔은 10나노 전환에 실패했고, 모바일 시장은 물론 파운드리 진출도 무산됐습니다.
인텔은 2019년 8월에야 첫 10나노 CPU를 출시합니다. 그것마저 고성능의 데스크톱이나 하이엔드급 노트북이 아니라 저전력 노트북에만 적용됐습니다. 경쟁사인 AMD는 TSMC에서 생산한 7나노 CPU를 장착하던 상황에서 기술 주도권을 내주고 만 겁니다.
인텔은 결국 10나노 공정 전환에 실패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조지 데이비스 인텔 CFO는 지난해 3월 "10나노는 인텔의 최고 공정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며 "10나노 공정은 기존의 14나노 공정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며 심지어 22나노 공정만도 못하다"고 밝혔습니다.
인텔은 GF가 그랬던 것처럼 10나노 대신 7나노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10나노 공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번번이 출시를 미루고 있습니다. 일러야 내년 하반기에나 PC용 7나노 CPU가 출시됩니다. 경쟁사보다 무려 3년이나 뒤처지게 됩니다.
인텔은 더구나 주력인 14나노 반도체 제품군의 일부 생산을 삼성전자 등에 맡기는 굴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컴퓨터 CPU 시장의 8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인텔이 차세대 공정 이행에 실패하는 바람에 14나노 제품군이 늘어나고 결국 생산라인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1993년부터 24년간 세계 1위를 유지한 반도체 업계 최강자 인텔이 초미세 공정 전환 실패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입니다.
인텔,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TSMC·삼성과 3파전 되나
현재 10나노 이하 반도체를 위탁받아 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는 3년 전과 마찬가지로 TSMC와 삼성전자 2곳 뿐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번번이 실패한 이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내민 업체가 있습니다. 2018년에 파운드리 시장에서 공식 철수했던, 10나노 공정 전환에 실패했던 반도체 '공룡' 인텔입니다.올해 1월 새로 취임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파운드리 재진출 등의 내용을 담은 'IDM 2.0'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인텔은 200억달러(약 23.4조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두 개의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고 추가로 확장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인텔은 이어 지난달 26일 기술 설명회를 열고 2025년까지 파운드리 사업 확장을 위한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세계 최대 통신 칩 제조사인 퀄컴과 아마존을 새 고객으로 소개했습니다. 인텔은 경쟁사의 7나노급인 '인텔4'를 거쳐 2025년에는 1.8나노급인 '인텔 18A'를 생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앞서 15일에는 인텔이 파운드리 업계 3위의 GF 인수를 추진중이라는 소식이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지난 1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5% 압도적인 1위이며 삼성전자 17%, GF 7% 순이었습니다. 인텔이 GF 인수에 성공한다면 업계 10위권에서 한번에 3위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쟁사와의 격차를 단숨에 뒤집고 앞서나가겠다는 인텔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업계에서는 기술력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TSMC와 삼성전자를 따라잡긴 어렵다고 봅니다. TSMC는 내년 여름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최초로 3나노 반도체 양산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5나노 공정이 적용된 시스템 반도체 제품을 양산 중인 삼성전자도 내년 하반기에 3나노 양산이 가능할 전망입니다.
아울러 GF는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 신청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GF는 오는 10월 상장 신청 사실을 공개하고 올해 안에 상장을 마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IPO 신청은 글로벌파운드리스가 인텔과의 잠재적인 합병을 원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신호"라고 평가했습니다.
물론 TSMC 추격에도 벅찬 삼성전자 입장에선 인텔의 '참전'이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출소 11일 만인 지난 24일 240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2030년까지 총 171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기존 계획을 적극적으로 조기에 집행하기로 했습니다. 반도체 분야는 한번 경쟁력을 잃으면 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삼성의 공격적 투자는 사실상 '생존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