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을 배경으로 5명의 절친 의사들과 병원 스태프, 환자 가족 등의 이야기를 다룬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각종 상황 등을 때론 코믹하고 때론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루고 있어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매회 마다 빠지지 않고 보여주는 수술실 장면은 꽤나 실감 난다.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열 시간 이상 걸리는 수술이지만, 드라마 속 의사와 간호사들의 수술실 모습은 진지하면서도 따스한 인간애를 물씬 풍긴다.
보고 있으면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저런 병원이라면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신뢰감이 생긴다.
그런데 현실은 드라마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방안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법안은 수술실 안에 외부 네트워크와 연결되지 않은 CCTV를 설치·운영하도록 했다.
촬영은 환자 요청이 있으면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열람은 환자와 의료인 쌍방 동의가 있을 때 할 수 있게 했다.
수술이 지체되면 환자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응급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등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의료진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 조항도 뒀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법안이 처음 발의된 것은 7년 전인 지난 2015년이다.
2014년 말 서울의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 중 의료진이 생일파티를 하는 사진이 공개돼 공분을 산 것을 비롯해 이후 수술실 내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술 취한 의사의 수술 집도, 무자격자 대리수술, 수술 부위에 남겨진 의료 기구, 마취상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등 생명을 다루는 수술실에서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수술 시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 방지와 의료사고 진상규명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여론을 바탕으로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이 발의됐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의료계는 CCTV가 설치되면 의료진이 감시받는다는 강박감에 과도하게 긴장하게 돼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번에도 대한의사협회는 "법안이 국회에서 최종적으로 통과된다면 헌법소원을 포함해 법안 실행을 저지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환자단체연합회는 "무자격자 대리수술, 성범죄, 의료사고 은폐 등을 예방하기 위해 시작된 수술실 CCTV 관련 의료법 개정운동이 7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며 신속하게 국회 본회의 통과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를 보면 참여자 1만 3959명 가운데 97.9%인 1만 3667명이 찬성 의견을 냈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진의 인권과 자율성은 소중하다.
의료계에서 우려하는 CCTV 설치에 따른 부작용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여론이 CCTV 설치를 압도적으로 원하는 까닭은 자신의 생명을 오롯이 의료진에게 맡긴 채 수술대에 오른 환자의 생명이 훨씬 소중하기 때문이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수술실 CCTV 녹화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불신을 조장하기보다 오히려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어렵고 힘든 수술을 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애꿎은 의료분쟁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 역할을 할 수 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여러 에피소드 가운데 아이가 아파 응급실을 찾은 젊은 엄마가 진료가 지체되자 조급한 마음에 "여기 의사 없어?"라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자식의 목숨 앞에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친 채 울부짖던 그 젊은 엄마는 알고 보니 다른 종합병원 전문의였다.
의료계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일반 국민들의 정서에 쉽게 공감할 것이라 본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이들에게 생명을 대신할 수 있을 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