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서울 종로구 한 김치찌개집 사장 최모씨는 한숨이 늘었다. 한창 북적일 오후 6시에도 손님이 한 팀도 없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손님이 들어오면서 "장사하세요?"하고 물을 정도였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최씨 가게는 '맛집'으로 꼽혔다. 점심시간에는 매일같이 긴 줄이 늘어섰고, 저녁에도 지하 1층과 지상 1층 총합 100석 규모 가게가 꽉 찼다. 하지만 지금은 오후 6시가 되면 직원 7명을 모두 퇴근시키고 혼자 남아 가게를 맡는다. 70석 규모의 지하층은 아예 닫은 지 오래다.
23일 최씨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최씨는 "정말 최악이다. 영업시간을 1시간 줄이면 6시부터 8시까지 꾸준히 오던 손님들도 다 끊기고 6시대에만 온다. 매출은 4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저녁 장사를 아예 접을 생각도 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면서 현행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다음달 5일까지 2주간 연장됐다. 4단계가 적용되는 수도권에서는 지금처럼 낮 시간대 사적모임은 4명까지 가능하고, 오후 6시 이후에는 2명까지만 만날 수 있다. 다만 4단계 지역 음식점과 카페에는 오후 6시부터 '백신 인센티브'가 적용돼 접종 완료자 포함시 최대 4명까지 모일 수 있다. 대신 음식점과 카페 매장 영업시간은 기존 오후 10시에서 9시로 1시간 단축됐다.
음식점·카페 '밤 9시 영업시간 제한' 첫날, '백신 인센티브'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코로나 규제'가 강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민 백신 접종률이 낮은 상황에서 2차 접종까지 모두 마친 사람들만 백신 인센티브에 포함한 게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영업시간을 기존 오후 10시에서 9시로 줄인 게 더 타격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8시 30분부터 양천구 목동의 음식점들은 영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돼지고기집 사장 임모(53)씨는 "단순히 영업시간은 1시간 줄인 것이지만 사실상 8시 전부터 손님이 아예 안들어오니까 매출 타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8시 30분도 안됐는데 손님들이 싹 다 빠졌다"며 "원래는 이 시간이면 한창 더 장사할 시간이다"고 덧붙였다. 임씨 뒤로는 텅 빈 가게를 정리하는 직원들만 보였다.
한 양꼬치 가게 직원인 중국인 A씨는 "우리 가게는 두 개인데 보통 작은 가게는 2차 손님들이 많이 온다"며 "오늘은 작은 가게가 텅 빈 수준"이라고 했다.
A씨는 "9시에 영업을 마치면 8시까지 손님을 받으라는 소리인데, 그 시간에 어떤 손님이 2차에 오겠느냐"며 "그 한 시간이 방역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업에는 큰 피해를 준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영업시간을 1시간 단축하는 대신 '백신 인센티브'를 내놓았지만 자영업자들은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날 기자가 만난 음식점 직원들은 백신을 맞은 4명이 들어오는 경우를 거의 못봤다고 했다. 돼지고기집 사장 임모씨와 양꼬치집 직원 A씨는 모두 "이날 손님 가운데 '백신 인센티브'에 적용되는 사람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기자가 목동 인근 음식점 10여곳을 방문한 결과 '백신 인센티브'에 해당하는 경우는 딱 한 팀뿐이었다. 이 음식점 직원 B씨는 "백신 맞은 것을 확인하고 4명이서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팀이 딱 한 팀 있었다"며 "한 명은 캐나다에서 접종했고, 나머지 3명은 한국에서 접종을 마쳤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접종한 인원은 '백신 인센티브'에서 제외되지만, 4명 중 3명이 맞은 경우에 해당해 무난히 출입이 허용된 경우다.
백신을 맞은 4명 가운데 한 명인 민모(57)씨는 "음식점에서 백신 접종을 꼼꼼히 확인하더라"며 "그래도 백신 맞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더 안전하니까 이런 식의 정부 정책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가게에서도 백신 맞은 팀이 우리 4명밖에 없더라"고 덧붙였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오후 10시에서 9시로 영업시간을 1시간 줄인 게 방역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종로구 한 카페 사장 이모(41)씨는 정부의 밤 9시 영업시간 제한 조치에 대해 "자영업자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건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씨는 "솔직히 9시는 좀 심한 것 같다"며 "9시든 10시든 방역에서 무슨 차이가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돼지고기집 사장 임모씨도 가게를 정리하고 담배를 피우며 직원과 "코로나가 10시면 걸리고 9시면 안걸리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조치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도 많았다. 오후 9시가 돼 음식점에서 나온 이모(26)씨는 "1시간 줄인게 사실상 무슨 의미가 있냐"며 "오히려 친구들끼리 집에 모여서 더 놀게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미 백신 접종을 완료한 시민들도 이번 조치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종로구 한 음식점 앞에서 만난 김문선(71)씨는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되는데 1시간을 줄이면 자영업자들이 너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백신 다 맞은 사람들은 나같은 노인들인데 우리가 밤 늦게까지 뭘 먹겠느냐"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무기력을 넘어 분노를 보이기도 했다. 김치찌개집 사장 최모씨는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가만히 있으니까 정말 자영업자들을 무시하나 싶다"며 "정부가 계속 자영업자들에게 가혹한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저녁에 문을 닫고서라도 자영업자 모임에 참석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일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오후 9시 영업제한이라는 더욱 강한 규제를 검토하는 것은 정부가 자영업자를 더 이상 국민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및 오후 9시 영업제한 조치를 강행할 경우 전국 단위 정부 규탄 차량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