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같죠. 그나마 '영끌'이라도 해서 내 집 마련한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금리가 오른다고 하니까 한 달에 얼마나 오를까. 지금도 힘든데 어떻게 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들죠"
김석현(40·가명) 씨는 15년 전 입사 후부터 모아온 자산으로 서울 외곽에 작은 구축 아파트를 샀다. 결혼 후 전세를 두 번 옮기고 내린 결정이었다. 집 값은 계속 오르는데 전세값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김 씨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도 '패닉바잉'의 열차에 올라탔다. 부모님께 5,000만원을 빌렸고, 은행·사내 대출은 물론 마이너스 통장 대출도 받았다. 전세 세입자를 구해 '갭' 구매를 했다. 이렇게 무리한 끝에 겨우 내 집을 마련했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김 씨는 "내년에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풀로 받아야 하거든요. 지금 금리로 예상해봐도 이자가 적지 않은데, 이게 더 오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죠"라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영끌족'들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저금리 장기화로 가계 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금융당국이 금리인상, 대출 축소 등 강경책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압박에 시중 은행들은 주담대 변동금리를 일제히 끌어올렸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은 지난 18일부터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에 연 2.48~4.24% 금리를 적용키로 했다. 급기야 지난주 NH농협은행이 오는 11월까지 신규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시중은행의 신규 주담대 전면 중단은 사상 처음이었다.
농협은행의 주담대 대출 중단 이후, 우리은행도 3분기 대출한도를 소진했다며 9월까지 전세자금 대출을 중단했다. SC제일은행 역시 대표적인 부동산담보대출인 '퍼스트홈론'의 일부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이달 30일부터 이 상품의 전결 우대금리도 0.2~0.3%포인트 낮춘다. 금융당국의 주문에 따라 신용대출 문턱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금융당국의 강경 기조에 따라 대출 축소·중단하는 은행이 늘어나면 '내 집 마련'의 통로는 더욱 좁아져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22일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카페 등에는 "이사를 앞두고 당장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대출이 막힐까봐 걱정이다. 잔금일이 얼마 안남았는데 갑자기 이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불안감을 토로한 글들이 눈에 띄었다.
이에 더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도 사실상 코 앞까지 다가온 상황이다. 현재 사상 최저수준인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이자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답답한 것은 '영끌족' 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장기간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용산구에서 양꼬치집을 운영하는 A씨(50)는 "코로나 때문에 매출이 50%는 줄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버텨야 해서 올해 초 6,000만원 대출을 받은 것에서 추가로 대출을 받아야 할 수도 있는데, 앞으로 정책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높아진 이자 걱정을 했다. 평소라면 손님으로 가득차 발디딜틈이 없었다는 A씨의 가게에는 오후 6시쯤 단 두 명의 손님만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포구에서 안경원을 운영하는 B씨도 "소상공인 대출을 받았는데,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추가 대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당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코로나가 얼마나 더 갈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대출시장에 이같은 혼란이 예상되는데도 초강력 조치를 예고한 것은 그만큼 가계빚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자산 시장의 부작용이 커질대로 커진 상황에서 정부의 조치는 불가피해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부동산 과열이란 큰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고 장기적으로 경제의 불안성이 높아지고 안정을 해치는 상황에서 대출규제 등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보완책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빚으로 버티고 있는 사람 등을 고려해 정책금융을 잘 마련,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