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1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18일로 예정됐던 대선후보 대상 정책 토론회를 취소하고, 대신 오는 25일 정견 발표회만 한 차례 열기로 했다. 당초 경준위는 18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구상했지만, 지도부 내부의 중재안을 수용해 봉합을 선택했다. 선관위 출범도 오는 23일에서 26일로 사흘 늦췄다. 대선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 개최를 놓고 '경준위 월권 논란'이 지속되면서 이 대표가 한발 물러선 셈이다.
다만 선관위원장 인선 문제는 잠재적 불안 요소로 남아 있다. 이 대표가 서병수 경준위원장을 선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검토해왔지만, 토론회 논란이 커지면서 지도부 일각에선 서 위원장 카드에 부정적인 기류도 읽힌다. 한 최고위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토론회에 대해선 이 대표가 양보를 했고, 정당한 권한이 있는 선관위가 추진하기로 했다"면서도 "오늘 회의에선 선관위원장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말했다. 당내 핵심 관계자도 통화에서 "경준위가 마련한 안이 선관위에서도 연속성이 있길 바라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라며 "서 위원장에 대한 비토가 있으면 무리하게 강행할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앞서 서 위원장은 경준위 차원에서 토론회 강행 의지를 보이면서 도마에 올랐다. 일각에선 서 위원장이 선관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 대표와 한 배를 타고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시선까지 있었다. 일부 최고위원들은 전날 이 대표에게 18일 토론회 취소와 함께 선관위원장 후보군에서 서 위원장을 배제해야 한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이 대표는 인사권 개입이라고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최고위 결정으로 토론회는 무산됐지만 선관위원장 인선에 대해선 본격적인 논의를 하지 않아, 지도부 내부에서 '갈등 제2라운드'가 펼쳐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 안팎에선 선관위원장 후보군으로 황우여 전 대표와 정홍원 전 총리,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그동안 선관위원장을 국회의장이나 국무총리역을 한 고문급이 주로 맡아온 것에 근거한 것이다. 또 다른 최고위원은 통화에서 "어쨌든 선관위원장의 임명권이 이 대표에게 있는 건 맞지만, 논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중립성 있는 인사를 미리 추천을 받는 등 지도부와 사전에 논의를 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이번 사태로 인해 이 대표가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가운데 선관위원장 인선 과정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자칫 '식물 당대표'로 전락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선관위 출범을 기점으로 당이 본격 대선 체제로 전환되는데, 선관위원장 임명권에 제약을 받으면 이 대표의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벼랑 끝에 몰린 이 대표가 자신의 임명권을 얼마나 발휘할지가 향후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 와중에 당내 대선주자들은 윤 전 총장을 향해 집중 견제에 나서며 토론회 참석을 촉구했다. 홍준표 의원은 이날 대선출마 선언에서 "토론이 그렇게 겁이 나면 지금 드랍(중도포기)을 해야 한다"고 했고, 유승민 전 의원은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토론이 겁나면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고 오든지 아니면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윤 전 총장을 겨냥했다. 장성민 전 의원도 비대면 기자회견에서 "검찰총장으로서 역할에 대해 평가하긴 어렵지만 정치인으로서 윤 전 총장은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 같다"고 지적했다.
윤 전 총장은 경쟁주자들의 견제에 대응을 자제하며 이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접촉하는 등 우군 확보에 나섰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친박계 정갑윤 전 의원의 주선으로 김 전 위원장과 오찬을 함께 하며 현재 당내 사태 관련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캠프는 토론회가 무산되자마자 대변인 성명을 내고 "국민의힘 경선 버스가 본격적으로 출발하면, 윤석열 예비후보 역시 국민과의 대화를 기초로 한 당내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며,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위한 후보의 비전도 가감 없이 보여드릴 것"이라고도 밝혔다.
당내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입당한지 보름 만에 당 대표와 갈등을 불거지면서 윤 전 총장도 나름 타격을 입었다"며 "이 대표를 당장 끌어내리려는 듯이 흔들거나 비토하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어 추세를 민감하게 보고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