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증으로 모진 가슴앓이를 해온 러시아 국적의 한인 3세 옥산나킴(35)씨가 지난달 24일 꿈에 그리던 임신의 감격의 맛봤다. 그것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고 자랐던 모국, 한국 땅에서다.
킴 씨는 지난 4일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임신'' 진단을 받던 당시 순간에 대해 "가슴이 벅차 올라 뭐라 말을 못했다. 사할린에 있는 남편에게 곧장 전화를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킴 씨는 러시아 사할린의 주도(州都)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살고 있는 이른바 ''카레이스키''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이 모두 한인인 ''순수 코리안''의 혈통을 잇고 있다. 아담한 키의 미인으로, ''김옥순''이란 한국이름도 갖고 있다.
◈ 사할린서 3년 불임치료 실패… 한국서 ''시험관아기'' 성공
옥산나킴씨는 새해 벽두인 지난 1월 3일 한국으로 건너왔다. 3년여에 걸친 사할린 현지에서의 불임증 치료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뒤다. 이어 1월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차 의과학대학교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를 찾아 시험관아기 시술에 들어갔고, 지난달 두 번째 시도에서 임신에 성공했다.
담당의인 이 병원 조정현 교수는 그동안의 진단·치료 과정에 대해 "불임의 원인은 나팔관 이상 탓으로 진단됐다"며 "과배란 유도를 최소화하는 ''미성숙난자를 이용한 시험관아기'' 시술을 했다"고 밝혔다.
미성숙난자를 이용한 시험관아기는 난소에서 미성숙 상태의 난자를 채취, 체외수정을 한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는 시술이다.
조 교수는 ''배란 유도 없는 시험관아기 시술'' ''자궁내막 이상에서의 골수세포 이식술'' 개발로 주목을 받아온 시험관아기 시술 권위자다.
킴 씨는 내한에 앞서 사할린에서 3년여간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며 불임증 치료에 매달렸지만 고배만 들이켠 채 심한 가슴앓이를 해왔다. 또 지난달 중순 한국에서의 첫 번째 도전에서도 쓰라림을 맛봤다.
그녀는 당시 상황에 대해 "교수님이 ''임신 수치가 낮게 나왔다''며 약 먹고 사흘 뒤 오라고 해 병원을 다시 찾았더니…"라고 말꼬리를 흐린 뒤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러다 잠시 뒤 "임신 통보를 받던 순간의 느낌이 어땠느냐"고 화제를 돌리자 다시 환해진 얼굴로 "임신됐다는 교수님의 말을 처음에는 안 믿었다"면서 "태어날 아기가 똑똑하고 잘 생겼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비쳤다.
◈ 한국, 의료기술·서비스 면 우수… 의료전망 밝아
그녀가 내한 시술을 마음 먹은 것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지의 한 40대 러시아 여성이 조 교수에게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고 쌍둥이를 출산했다는 말을 여자친구에게서 들었다.
"당시엔 시술비가 너무 비싸 한국에 올 엄두를 못 냈다. 그러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결심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어 "사할린에도 40곳에 이르는 병원이 있지만, 미성숙난자 채취 같은 방법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사할린에선 한 가지 치료를 하는데도 이 병원 저 병원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여기선 모든 검사가 한곳에서 끝나는 데다 간호사가 친절하게 다 설명해줘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킴 씨는 불임 치료를 받으려 한국을 찾는 사할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도 "사할린을 비롯한 극동아시아 일대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의료기술과 서비스 면에서 한국을 따라올 수 없어 의료허브로서의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킴 씨는 오는 29일 사할린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카레이스키의 삶에 대해 그녀는 "예전보단 나아졌다지만 한인을 바라보는 러시아인들의 시선에서 왠지모를 차별감이 느껴진다"면서 "한국사람이 왜 한국 땅에서 살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희망을 말했다. 현지에서 미용실을 운영 중인 그녀는 "모스크바에서 미용 기술을 더 연마한 다음 한국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