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 있던 홍 장군의 유해는 78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국립현충원에 안장되기 전 최고급 훈장을 받게 됐다.
앞서, 홍 장군은 1962년 항일무장투쟁의 공적과 건국의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지만, 이번에 받은 훈장은 한 단계 높은 건국훈장 1등급이다.
청와대는 홍 장군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한 배경에 대해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공적 외에도 전 국민에게 독립 정신을 일깨워 국민 통합과 애국심 함양에 기여한 공적이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홍 장군 훈장 수여식은 한국과 카자흐스탄 양국의 협력관계를 보여준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1868년 평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일제 치하에서 의병투쟁에 몸을 던졌으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까지 오르며 간도와 극동 러시아에서 일본군을 토벌했다.
2m 가까운 큰 키에 용맹한 외모였던 그는 일본군에게는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두려운 존재였고, 민중에게는 '백두산 호랑이' '축지법을 구사하는 홍범도 장군'으로 불릴 만큼 추앙받았다.
홍 장군은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최진동 장군과 함께 전면전을 벌여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 명에게 상처를 입혀 대승을 거뒀다. 같은 해 10월 보복전에 나선 일본군 대부대를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와 합세해 무찌른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기도 하다. 두 전투는 무장독립전쟁사의 기념비적 전투로 꼽힌다.
이후 700여 명의 독립군 통합부대를 이끌고 1921년 1월 우수리강을 건너 러시아령으로 들어갔으며, 항일무장투쟁을 꿈꾸며 이만과 연해주 등지에 머물렀지만, 1937년 옛소련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인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이주해 현지에서 7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홍범도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16~17일 이틀간 국민추모제를 진행하고 있으며, 홍 장군의 유해는 국민추모제가 끝난 뒤인 오는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