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독립운동 장소라고요?"…안내판 없고, 주민도 몰라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랑리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정서송 선생 생가터 인근. 현재는 풀숲이 우거져 생가터 위치도 파악되지 않으며, 독립운동을 알리는 안내문도 설치돼있지 않다. 정성욱 기자


"여기가 독립운동가 생가터라고요? 처음 듣는데요."

13일 경기 화성시 장안면 사랑리, 독립운동가 정서송 선생의 생가터에서 만난 주민(61)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서송 선생의 집터는 우거진 잡초와 나무 차지였다. 곳곳에 솟아있는 풀 때문에 생가터 위치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더욱이 생가터 인근엔 그의 행적을 알려주는 표시석 하나 없었다.

정서송 선생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당시 수원군 장안면(현 화성시 장안면)일대에서 군중을 이끌고 일본 순사가 머물던 경찰서를 공격했다. 그는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기도 했다.

주민은 "이 동네에서 60년을 살았는데 이곳이 독립운동가 생가터라는 건 처음 듣는다"며 "사실이라면 나라에서나 시에서나 푯말이라도 설치했을 것"이라며 믿지 않았다.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 한 공사부지. 이곳 일대는 독립기념관에 등록된 사적지로, 과거 주민들이 살던 마을이었으나 독립운동에 보복하려는 일본군이 찾아와 불을 질렀다. 정성욱 기자

일제에게 보복성 방화를 당했던 비극의 장소는 공사현장으로 변했다.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 일대 공터는 3m 높이 철제 가림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가림막 안쪽에는 사무실로 쓰일 컨테이너 두 개 동이 놓였다.

100여 년 전 일본군은 이곳으로 들이닥쳤다.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을 탄압하고자 마을에 불을 지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은 기록에만 남았을 뿐, 이곳에도 역시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는 표시석이나 안내문은 없는 상황이다.

이곳에서 40년 넘게 살았다는 주민은 "동네에 사적지가 있다는 건 몰랐는데, 아무래도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면 홍보도 안 하는 것 같다"며 "땅 주인의 재산을 침해해선 안 되지만, 역사적으로 기념할 장소라면 적어도 안내판 정도는 설치해야 되지 않나"라고 짚었다.


'역사적 장소 보존하자' 시민 요청에도…있던 표시석도 사라져

경기 의왕시 포일동에 위치한 우리말 연구가 이희승 선생 생가터. 2017년 개발공사가 시작돼 현재는 5층 건물이 들어섰으나, 생가터를 알리는 표시석은 없는 상황이다. 정성욱 기자


시민들이 나서서 역사적 장소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곳도 있다.

경기 의왕시 포일동에 위치한 '우리말 연구가' 이희승 선생의 생가다.

이희승 선생은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에 맞서 '조선어학회'에 입회한 독립운동가다. 우리말 연구에 힘쓰던 그는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에는 대중에 알려져있는 국어대사전을 펴내기도 했다.

현재 그의 생가터에는 5층 높이 빌라 건물이 들어서있다. 2017년 개발공사가 이뤄지면서다.

공사 당시 시민들은 이희승 선생의 업적을 기릴 수 있게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시에 요청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공사가 진행되며 오히려 기존에 설치됐던 표시석마저 철거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도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건물로 변한 생가터를 찾아 이희승 선생의 업적을 소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주민(58)은 "철거 당시에 시민들이 보존 요청을 했지만 시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표시석을 만들자는 의견도 묵살됐다"며 "가끔씩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견학을 오는데, 빌라 건물만 보고 어떤 설명을 할지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은 후손들에겐 큰 힘


14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오의선 선생의 생가에서 그의 손주며느리인 이정희 씨가 웃어보이고 있다. 정성욱기자
반면, 독립운동가에 대한 국가의 관심은 후손들에게 큰 힘이 된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는 중국 상하이와 국내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벌인 오의선 선생의 생가가 있다. 1919년 당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경기도 대표를 맡기도 한 그는 군자금을 모으며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현재 오의선 선생의 생가는 그의 손주며느리인 이정희(86)씨가 홀로 지키고 있다.

이씨는 "어디 기관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오의선)가 독립운동가였다면서 안내판도 설치하고 먹을 것도 주고 갔다"며 "영감은 10여년 전 이미 떠났고 매일매일이 외롭지만,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는 걸 알아봐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다만, 생가의 슬레이트 지붕은 부식되고 기왓장도 녹이 슬어있는 등 일부 보수가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발굴은 정부, 관리는 지자체 몫…사적지 '엇박자' 행정


8월 15일 광복절이 76주년을 맞이했지만, 항일운동을 벌였던 역사적 장소들은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14일 국가보훈처(보훈처)와 독립기념관 등에 따르면 보훈처가 선정·발굴한 독립운동 관련 국내 사적지는 총 1777곳으로, 이 중 경기도에는 315곳이 있다.

보훈처는 1~2년 주기로 전국을 돌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를 선정한다.

그러나 관리는 지자체 몫이다 보니 지역별로 사적지 관리에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주기적으로 전국을 돌며 사적지를 발굴하고 있지만, 관리 자체는 지자체가 하다 보니 관리가 잘 되지 않는 곳이 있는 것 같다"며 "대부분 사적지가 개인 재산으로 속해 있다 보니, 국가든 지자체든 먼저 개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선 작은 것부터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했던 이준식 전 관장은 "역사적 장소를 관리하는 것은 지자체장의 관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독립운동가 한분 한분을 기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거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역사적 장소에는 기본적인 안내판은 설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포대학교 사학과 고석규 명예교수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을 기념하는 것은 기본적인 가치"라며 "각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사적지를 발굴하고 국가에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