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강타한 기후위기급 폭염의 시사점은?
동시에 지구촌 곳곳에서는 기후변화, 기후위기란 말로만 설명이 가능한 재앙들이 줄을 이었다. 미국 서부와 호주의 꺼지지 않는 산불과 중국 남부와 유럽을 휩쓴 대홍수, 초유의 무더위를 경험한 북국 러시아의 모스크바. 동토 시베리아에 무더위가 찾아들어 장구한 세월동안 동결됐던 이상한 박테리아들이 기어나올까 두려워하는 인류.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또 녹는다는 걱정엔 오히려 둔감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 인류를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으로 내몬 코로나19의 창궐도 기후위기의 인과응보란 말들이 설득력있게 나오고 있다.세월이 갈수록 한반도에도 기후위기의 징후라고할 만한 현상들이 하나둘씩 추가되고 있긴 하지만 극지나 지구 반대쪽의 홍수쯤으로 치부해온 게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한국인 다수가 갖는 생각이었는 지 모른다. 그러나, 올 여름 서울.수도권을 강타한 기후위기급 폭염은 안이했던 우리 생각에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21세기 인류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가 바로 우리 일이구나! 이대로 가다가는 조만간 이보다 더 강한 놈을 만날지도 모르겠는데…'라는 위기의식.
대한민국은 면적 대비 'CO2 배출 챔피온'
한국의 전기에너지 생산구조를 살펴보면 CO2 배출대국인 이유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에너지원별 발전량(2019년) 비중에서 석탄 40.4%, LNG 25.6%로 온실가스를 내뿜는 발전비중이 66%나 된다. 이에 비해, 원자력 25.9%, 신재생에너지 6.5%로 30%를 갓 넘는 수준이다. 세계적인 제조기업을 무수히 보유한 미국보다 환경적으로 더 나쁜 구조다. 미국의 2020년 발전량 비중은 석탄 19%, 원자력 19%, 재생에너지 21%로 석탄의 비중이 우리보다 크게 낮다.(KOTRA 자료)
국민을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유지인가?
정부는 2020년 '9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오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 비중을 40.4%→29.9%까지 끌어내리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그리고 지난 5일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탄소배출량을 0~2540만 톤까지 줄이겠다는 추가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하는데 유독 한국 정부는 애초 석탄화력발전을 유지하는 걸 전제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도출했다. 석탄화력발전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정부란 걸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석탄발전소는 온실가스 22.3% 내뿜는 괴물
한국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뼈대는 탄소는 줄이되, '향후 30년 동안 석탄화력발전소 운영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석탄화전의 수명은 대략 30년 내외로 알려져 있다. 정말 탄소를 줄이겠다는 의지가 있는 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정부의 입장은 건설중인 화력발전소 4기의 처리방식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2020년 8월 현재 한국에는 58기의 화력발전소가 가동중이고 삼척과 강릉에 4개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추가로 건설되고 있다.발전소 건설이 수년전부터 전력수급계획과 기업체들과의 계약에 따라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건설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13일 강릉에 5조 원, 삼척에 4조 원을 들여 건축중인 사업을 중단하면 매몰비용과 철거비용이 엄청나다"며 "SK과 포스코 등 기업 재산권에 대한 보상방안이나 건설을 중단할 법적근거가 구체화 되지 않으면 중단시키지 못한다"고 말했다.
탄소 과다배출국 오명…수출기업엔 부메랑
탄소중립의 대세 속에서 한국은 벌써부터 여러 국가로부터 탄소 과다배출국 오명을 쓰고 있다. 유럽연합은 한국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유독 문제삼고 있고, 우리 철강업체에 대해 이른바 탄소세(탄소국경조정제도 적용) 부과를 예고했다. 그들의 탄소중립 노력이 강화될수록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엔 더 큰 압박을 가해올 가능성이 농후하다.환경운동연합 권우현 에너지기후 활동가는 13일 "애초부터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노력을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화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에너지전환지원법(양이원영 의원)에 따른 건설중단의 출구전략은 건설사에 돈을 물어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도 석탄화전 건설의 리스크를 알고 있었던 만큼 100% 비용보전은 안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일관되지 않은 정책추진은 일을 더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 문 정부 집권 초 유독 우리나라에는 미세먼지가 극심했던데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화력발전소 셧다운 계획'을 거창하게 발표했다. 골자는 화전 신규허가 중단과 계절관리제 시행, 노후 화력발전소 10기 조기폐쇄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당진에 계획된 2기의 석탄화전 건설계획이 백지화됐을 뿐, 새롭게 건설된 화력발전소가 신서천발전소(상업운전중) 등 3개, 건설중인 발전소 4개 등 7기에 달한다. 화전을 가급적 줄이겠다던 정책을 내세운 걸 감안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수치다. 전 정권에서 추진되던 화전정책을 상당부분 수용했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소 신규허가 안했지만.. 7기나 건설
역사적인 무더위가 강타한 올해도 간당간당한 전력예비율이 정부의 걱정거리였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발전 및 에너지 정책의 초점은 여전히 전력량을 어떻게 충당해낼 지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 여기에다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 입안 과정에서 산업계의 목소리가 반영됐다는 설에는 놀라움을 금하기 어렵다.일관성을 결여한데다 큰그림을 외면하는 듯한 정부정책 기조만 놓고보면 석탄화력발전소 4기 건설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어설픈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오히려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킨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방법은 이미 있다. 할 수 있는 걸 안하는 것이 문제다"라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크레타 툰베리의 말은 우리 정부에도 해당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