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11년 만에 마련한 꿈에 그리던 집이 지하 500m 아래로 추락했다.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생존을 향한 열망, 미래에 대한 희망은 땅으로 꺼진 삶의 의지마저 일깨운다. 영화 '싱크홀'은 재난 상황 같은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지를 끌어올린다.
주인공 동원(김성균)은 서울에 내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보통의 직장인이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던 동원은 11년 만에 꿈에 그리던 자가 취득에 성공한다. '이삿날 비 오면 잘 산다'는 속설처럼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청운빌라 501호에 입주한 그는 행복하기만 하다.
이사 첫날부터 프로 참견러 만수(차승원)와 사사건건 부딪친 것은 물론 분명 일어나지 말아야 할 징조, 바로 수평이 맞지 않는 현상들이 하나씩 눈에 띄면서 동원의 마음 한편에 불안이 싹튼다. 그런 와중에도 자가 취득을 기념해 직장 동료들을 집들이에 초대한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자마자 빌라 전체가 지하 500m 땅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만수와 동원, 집들이에 왔던 김 대리(이광수)와 인턴 은주(김혜준)는 이제 살아남기 위해 500m 위로 올라가야 한다.
'7광구' '타워'의 김지훈 감독이 이번엔 '싱크홀'(sink hole, 땅이 가라앉아 생긴 구멍)을 바탕으로 한 재난 영화로 돌아왔다. 자연적 요인은 물론 장마철 집중호우 등으로 약해진 지반 혹은 개발사업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하는 싱크홀은 우리나라에서만 1년에 평균 900건, 하루 평균 2.6건이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여타 재난물이 그렇듯이 재난 전 사람들을 소개하고, 재난이 발생한 후 이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석을 따라 이야기는 진행된다. 여기에 코미디 장르를 입혀 무게감을 덜어내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싱크홀'의 가장 큰 장점은 도심에 사는 우리네 일상을 언제든 위협할 수 있는 싱크홀을 재난 영화의 소재로 썼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겁고도 민감한 이슈 중 하나인 부동산 문제를 싱크홀이라는 재난과 엮어 냈다. 그렇게 부동산 이슈뿐 아니라 청년 문제, 청운빌라에 사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
보통 사람들, 서민들이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청운빌라에 싱크홀이 발생하며 500m 아래로 추락할 때, 아마 관객들은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다. 어렵게 마련한 내 집, 가져보고 싶은 내 집이 추락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동원에게 감정적 유대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무너져 내렸다는 공포보다 집값 하락이라는 재난이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싱크홀 추락 이후부터는 희망과 의지를 갖고 재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생존기에 초점을 맞춘다. 땅 위에서도, 땅 아래에서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담겨 있다.
문제는 영화가 좋은 소재를 매력적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난 영화의 공식을 따라 무난하게 진행되지만, 이를 뛰어넘는 감동까지는 끌어내지 못한다.
500m 아래로 추락하는 장면에서 CG라는 점이 눈에 띄며 추락의 긴박함을 다소 떨어뜨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싱크홀로 추락하기까지 캐릭터를 설명하는 시간이 길어서 지루해지는 면이 있다. 캐릭터들 역시 믿고 보는 코믹 연기의 대가들을 모아놨지만, 과장된 캐릭터와 유머 탓에 오히려 몰입도가 떨어진다.
한 가지, 너무나 현실적이라 씁쓸했던 지점도 존재한다. 동원이 청운빌라에 이사 온 후 청운빌라에 사는 주민들의 모습을 비출 때, 그 안에 생계를 위해 일 나간 엄마를 홀로 기다려야 하는 아이, 아픈 어머니를 홀로 돌봐야 하는 아들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를 짚었다.
그들 역시 동원 일행과 함께 싱크홀로 추락한 피해자들이지만, 생존의 과정에서 주인공 일행에 포커스가 맞춰지며 카메라의 중심에서 비켜난 이들은 다시 한번 약자이자 희생자가 됐다. 물론 모든 캐릭터를 다 아우를 수는 없지만,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재난 속 약자는 약자로 남는다는 사실이 다가오며 안타까움이 생겨난다.
그러나 20채의 건물을 지어 일상의 공간인 동네를 현실감 넘치게 구현한 점, 그리고 짐벌(Gimbal,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물체가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물)을 활용한 대형 세트를 통해 초대형 싱크홀 속 상황을 생생히 전달한 점 등은 재난 현장의 한가운데로 관객을 초대한다.
집이 추락하고, 집값이 추락하는 것보다 더 큰 공포는 생에 대한 의지가 추락할 때일 것이다. '싱크홀' 속 동원을 비롯한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생에 대한 의지, 미래를 향한 희망을 꺼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500m 땅속에서 건져 올렸다. 영화가 정말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117분 상영, 8월 11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