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서 엉뚱한 기관이 발전사업 관련 허가를 내줬다가 이를 무마하려 하는 등 업무에 미숙한 모습도 포착됐다.
12일 인천시와 옹진군, 인천지방해양수산청 등에 따르면 인천 앞바다에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추진 중인 업체는 10여개에 이른다. 이들은 업체는 인천 앞바다에 해당하는 옹진군 덕적도와 이작도를 중심으로 발전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들 업체 대부분이 사업 내용을 지역 거주민들에게 미리 알려 동의를 얻는 사전고지 제도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가장 반발이 두드러진 업체는 해외업체의 한국법인 A업체와 한국남동발전 주식회사 등 2곳이다.
권한 밖 기관한테 승인받고 EEZ에 풍황계측기 설치한 A업체…지역민 '특혜 의혹' 제기
A업체의 경우 발전사업 내용 등을 주민들에게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 타당성을 알아보기 위한 단계에 해당하는 '해상 풍향계측기 설치'를 허가 받았다. 주민들은 A업체의 계측기 설치가 특혜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주민들이 A업체가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렇다. A업체는 지난해 옹진군으로부터 계측기 설치 허가를 승인 받아 인천 앞바다 4곳에 계측기를 설치했다. 그러나 일부 계측기가 옹진군 관할 밖 해역에 설치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게다가 문제가 된 계측기 위치가 연평도 포격전 등 북한의 군사도발시 민간인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정한 안전항로에도 포함됐다.
풍황계측기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풍속과 풍향 등을 계측하는 장비다. 통상 해상풍력발전이 우리 영해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관할 기초자치단체가 설치 허가를 승인한다. 그러나 A업체가 신청한 계측기 위치 4곳 가운데 2곳이 우리 영해 밖, 즉 EEZ(배타적경제수역)이었다.
EEZ는 단순히 우리나라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공유수면'이기 때문에 이곳에 장비를 설치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럴 경우 권한 밖 해상에 계측기 설치를 승인한 옹진군은 해당 계측기에 대한 설치 허가를 취소한 뒤 원상복구 명령을 내려야 한다. A업체는 해양수산부 산하 인천지방해양수산청로부터 재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옹진군은 지난 5월 A업체에게 해당 계측기에 대한 설치 허가를 취소했지만 원상복구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이를 넘겨받은 인천해수청도 원상복구 명령은 생략하고, '주민수용성 문제를 해결하라'는 '조건'을 내걸어 설치를 허가했다.
EEZ에 계측기를 설치하려면 '공유수면 점용 허가→계측기 설치 실시계획 승인→착공→준공→운영'의 단계를 거쳐야 하며, 매 단계마다 허가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A업체는 '조건부 승인'을 받으면서 이 모든 단계를 생략하고 계측기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손해배상청구 피해야…" 잘못 나온 허가에 대한 책임 미룬 옹진군과 인천해수청
A업체에게 처음 계측기 설치를 승인했을 당시 옹진군은 해수부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 수협중앙회, 인천시, 중부지방해양경찰청, 덕적‧이작도 관할 면사무소 등에 의견을 물었는데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국방부나 해수부가 계측기 위치만 파악했어도 사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한 이작도 어민은 "계측기가 있는 곳이 꽃게어장과 겹친다"며 "유사시 대피항로이자 꽃게어장에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면서 어떻게 주민들도 모르게 할 수 있느냐"고 토로했다.
계측기 허가기관인 옹진군과 인천해수청은 문제가 된 계측기 허가에 대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다. 옹진군이 A업체의 계측기 설치 허가를 취소하기 직전 내부적으로 공유한 보고서를 보면 "허가관할이 아닌 공유수면에 점‧사용허가처분을 한 후 허가를 무효 또는 취소 처분 시 (피허가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며 "이에 대비해 피허가자의 착오로 신청됐고 관련기관 협의 등 절차적 정당성을 적극 피력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즉 옹진군은 잘못 허가한 계측기에 대해 허가 취소 처분을 할 경우 A업체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해 'A업체가 관할구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계측기 설치 허가를 신청해 발생한 사안이라고 대응하고, 원상복구 문제에 대한 책임은 의견 검토 당시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인천해수청에게 미루는 것으로 지침을 정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올해 3월 24일에 열린 223회 옹진군의회에서도 군의원들이 해당 계측기 처리 문제에 대해 문의하자 옹진군 관계자는 "엄밀히 따지면 (계측기를) 철거해야 한다"고 답변하면서도 "이전이든 아니면 다시 재협의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낫다)"고 말한 바 있다.
인천해수청은 옹진군이 해당 계측기 설치시 환경영향평가에서 문제가 될 게 있느냐고 의견을 물었지 관할해역에 대한 건 묻지 않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견 검토 요청 당시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 원상복구 후 원점 재검토 대신 조건부 승인을 내렸다. A업체가 계측기 설치에는 수십억이, 철거에는 수억원이 들어간다며 항의한 것도 이러한 결정의 한 이유다.
결과적으로 A업체의 계측기 2개는 무허가 운영 중이다. 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이하 공유수면법)은 공유수면을 무단으로 점‧사용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했다. 인천해수청은 A업체에게 계측기 설치를 조건부 승인하면서 형사처벌 대신 계측기 설치 허가를 정식 승인받을 때까지 기간을 산정해 변상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인천해수청 관계자는 "특혜로 오해 살만한 여지가 있지만 적극 행정이라고 이해해 달라"며 "문제가 된 계측기도 주민수용성 등 허가 승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계측기 철거 명령을 내릴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한국남동발전도 일방적 해상풍력발전 추진 멈추라"…전기위원회에 탄원서도
인천남동발전㈜ 역시 지역 주민들에게 제대로 의견을 묻지 않고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다가 제동이 걸렸다.
덕적·자월해역 어촌계는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에 '인천 남동발전 덕적·자월해역 해상풍력 발전사업 허가에 관한 건'이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 탄원서에는 인천남동발전이 추진하는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승인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기위원회는 전기사업 허가와 전력구조 정책 수립·추진 등 전력계통의 안정적 운영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다.
한국남동발전과 인천시는 옹진군 대초지도와 덕적도 해상 일원에 각각 300㎿씩 총 600㎿ 규모의 풍력발전 단지를 2026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연간 56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사업을 추진하면서 어업인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데다 지난 3월 인천시와 함께 연 주민설명회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어민들은 전기위원회에 낸 탄원서를 통해 "(남동발전이 추진하는) 해상풍력단지는 섬 코앞 연안으로 주민들의 앞마당이자 어민들의 조업과 양식을 위한 생계의 터"라며 "발전허가가 승인된다면 사업자가 최대 30년간 독점으로 바다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인데 어업인 대상으로 별도 의견수렴절차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남동발전이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전기위원회의 발전사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주민 반발이 계속되면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등 관련 사업에 난항이 예상된다.
앞서 지난 6월에 열린 제254차 전기위원회에서 남동발전의 '용의, 무의, 자월 해상풍력 발전사업 허가'는 발전사업 사전고지 및 주민 열람 관련해 '주민열람' 절차를 재시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심의가 보류된 바 있다.
남동발전과 MOU(업무협약)을 맺고 해당 발전사업을 적극 홍보하던 인천시에도 불똥이 튀었다. 주민들은 "시민들을 위해 추진한다고 하면서 섬 주민들은 외면하고 추진하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인천시는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민·어업인 협의체를 구성해 해상풍력 사업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MOU를 맺었지만 사업 추진의 주체는 남동발전"이라면서도 "그러나 시민의 생활과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상적인 기상조건과 용이한 전력계통' 인천 앞바다에 모인 해상풍력, 갈등 확대 불가피
일각에서는 최근 인천 앞바다에서 섬 주민과 발전사업자 사이의 갈등이 더욱 격화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최근까지 인천 앞바다에서 해상풍력발전사업을 하겠다고 밝힌 10여개의 업체 가운데 지역민 사전고지 등 주민수용성을 얻기 위한 활동을 벌이는 업체는 1~2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업체들의 사업 추진 속도가 비교적 빨라서 먼저 드러났을 뿐 다른 업체들도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발전사업을 추진한다면 같은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려면 반드시 주민수용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시행된 것도 이같은 전망의 이유다.
이 개정안은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국회의원 시절이었던 2018년 대표발의하면서 제정됐다. 이 개정안은 태양광‧풍력 발전사업 허가 취득 전 지역주민들에게 발전소 건설사업에 대한 사전고지 제도를 도입해 주민수용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천 앞바다가 국내 해상풍력 발전사업 비중에서 20% 이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도 향후 갈등 전망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2030년까지 해상풍력발전을 12GW(기가와트)로 확대할 계획이다. 1GW는 원자력 발전소 1기가 생산하는 전기량을 의미한다. 이는 2019년 용량 0.12GW의 100배에 달하는 규모다. 주요 사업지는 전남 신안군 해역과 인천 옹진군 덕적군도 해역이다. 신안에 약 8.4GW, 인천에 약 3.6GW 규모가 예상된다. 주요 사업 예상해역은 덕적도와 이작도 인근 해상이다.
인천에 이처럼 많은 발전사업이 예상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는 해상풍력 발전을 하기에 적당한 기상조건을 갖고 있다. 지난해 옹진군 대초지도 해역에 계측기를 설치한 남동발전은 이곳의 평균 바람 세기가 초속 6.5~7m로 풍력발전의 경제성 확보 최소치인 초속 5.5~6m를 넘겼다고 발표한 바 있다.
둘째는, 한국전력과의 연계선로 접속이 용이하다. 이는 발전사업을 통해 생산한 전기를 우리 생활에 쓸 수 있도록 한국전력의 송변전선로에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천 앞바다는 인근 영흥화력발전소가 있어 기존 연계선로가 이미 인천 앞바다까지 연결된 것과 다름없다. 더구나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도 변전소가 있다. 해상에서 영종도와 영흥도까지 연계선로를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타 해역에 비해 저렴하다.
강차병 이작도 어촌계장은 "정부의 기후변화에 따른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전환 방향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절차와 수산업 공존과 상생 등 에너지 정의는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