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청문회 과정서 불거진 자녀 입시비리·사모펀드 관련 의혹으로 기소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심에서도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2억 원대 부당이득이 인정된 미공개중요정보 이용 행위 중 일부가 무죄로 바뀌면서 부당이득 금액이 1000만 원대로 줄었지만, 형량은 바뀌지 않은 셈이다.
금액은 다소 줄었지만 미공개정보 이용 행위와 그 과정에서의 범죄수익은닉에 대해 재판부가 여전히 무거운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1심에선 무죄로 판단했던 증거은닉교사 혐의가 유죄로 바뀌기도 했다. 특히 재판부는 1심 양형에서는 금용범죄에 밀려 사실상 크게 반영됐다고 보기 어려운 입시비리 관련 혐의들에 대해 엄중한 판단을 내렸다.
미공개중요정보이용 상당수 여전히 유죄…부당이득 금액만 줄어
서울고법 형사1-2부(엄상필·심담·이승련 부장판사)는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미공개중요정보 이용 행위 중 일부에 대해 무죄로 결론을 바꿨다.
조 전 장관 5촌 조카인 조범동 코링크PE 실질 대표가 코스닥 상장사 WFM을 인수하면서 생성하게 된 정보를 이용해 정 교수가 주식거래를 한 혐의다. 조씨는 2018년 1월 초부터 정 교수에게 WFM 군산공장 가동에 관한 정보를 알려줬고, 정 교수는 이를 듣고 자신의 남동생 정모씨와 함께 주식매수에 나섰다.
2018년 1월 3일부터 5일까지 WFM 주식 1만 6772주를 7739만 원에 장내매수해서 1월 9일부터 22일까지 총 9426만 원에 매도했다. 1683만 원 수준의 부당이익을 본 것이다. 2심은 이 부분에 대해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를 인정했다.
판단이 바뀐 혐의는 정 교수와 동생이 같은 달 26일 장외거래로 주당 5000원에 사들인 WFM 실물주권 10만주에 관한 부분이다. 1심은 2018년 2월 9일 군산공장 가동 정보가 공개된 후 주가가 7200원으로 오르면서 약 2억2000만 원의 미실현이익(처분하지 않았기 때문)을 봤다고 판단했지만, 2심은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실물주권 10만 주를 매도한 사람이 미공개중요정보를 알지 못했던 우모씨라고 판단했지만, 2심은 다른 계약 내용과 조씨 진술 등을 토대로 코링크PE가 매도자라고 판단했다. 우씨에 대해 코링크PE가 이미 우선매수권을 행사한 상태에서 정 교수에게 팔았기 때문에 정 교수가 같은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던 매도자를 상대로 정보의 불균형을 이용한 거래를 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 측 변호인은 군산공장 가동 정보가 2017년 11월 이미 기사로 보도됐었고 12월엔 공시로도 나왔던 내용이라 미공개 정보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엔 단순히 공장 가동 소식 정도였지만, 코링크PE가 2018년 1월 WFM을 인수하면서 향후 음극재 사업을 진행한다는 중요 정보가 생성됐고 이에 '군산공장 가동'의 의미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 교수가 △자동차부품연구원이 2018년 2월 13일 WFM 음극재 평가실험을 한다는 정보를 2월 9일에 먼저 듣고 WFM 주식 3024주를 매수한 것과 △2018년 11월 WFM과 익성, 중국 통신업체가 음극재 공급 MOU를 체결한다는 소식을 미리 알고 WFM 주식 4508주를 매수한 것 역시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 판단이 유지됐다. 다만 해당 정보들이 공개된 후로 WFM 주가가 오르지 않아 정 교수가 얻은 이득이 없기 때문에 부당이득 산정에선 빠졌다.
정 교수가 이같은 주식거래를 하며 남동생의 처남이나 지인 등 남의 계좌를 빌렸기 때문에 범죄수익은닉 혐의도 적용됐지만, 미공개정보 이용 무죄 범위가 늘면서 범죄수익은닉 역시 규모가 줄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이득 유무나 크기에 상관없이 미공개정보 이용은 그 자체로 일반 투자자들에게 재산상 손실의 위험을 초래하거나 시장의 불신을 야기해 시장경제 질서를 흔드는 중대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비록 피고인이 미공개정보 취득 과정에서 고위공직자의 배우자로서 지위를 적극 내세우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 묵인하고 이용한 측면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강조했다.
자산관리인에 PC은닉 지시…증거은닉교사 유죄 변경
1심의 무죄 판단이 2심에서 유죄로 달라진 부분도 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정 교수가 자신의 자산관리인이었던 증권사 PB 김모씨를 시켜 증거물인 PC를 은닉하게 한 혐의다.
형법상 증거인멸·은닉은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해서만 적용된다.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한 증거인멸은 방어권 차원에서 처벌하지 않는다. 1심 재판부는 정 교수와 조 전 장관이 김씨와 함께 공모해 자택 PC의 저장매체와 동양대 교수연구실 PC를 은닉하기로 공모했다는 취지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범죄와 관련한 은닉이라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정 교수가 직접 PC를 나르는 등 일부 은닉의 실행행위를 했다고 해도 이는 실제 은닉행위가 아니라 준비행위라고 판단했다. 직접 증거은닉을 실행한 사람은 김씨이고 정 교수는 공범이 아니라 증거은닉교사범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김씨는 피고인의 부탁 외에는 증거를 은닉해야 할 아무런 이유나 동기가 없었고 피고인의 주거지를 방문할 때까지도 그런 보관 부탁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피고인의 지시에 따라 증거은닉을 결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행위임에도 김씨에게 지시해 실행하도록 한 행위는 방어권의 남용에도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입시용 스펙 위조 죄질 매우 나쁜데도 남에게 책임 전가만 해"
1심과 마찬가지로 2심에서도 정 교수가 딸 조모씨에게 만들어준 '7대 스펙'은 모두 허위라는 판단이 유지됐다.
△단국대 의과학연구소 인턴 △공주대 생명과학연구소 인턴 △서울대 공익법센터 인턴 △아쿠아펠리스 호텔 인턴 △KIST 분자인식연구센터 인턴 △동양대 표창장 △동양대 보조연구원 등이다. 정 교수의 딸 조모씨가 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서 사용한 스펙들이지만 사실은 전혀 활동 근거를 확인할 수 없거나 허위라고 볼만큼 부풀려졌다는 판단이다.
특히 정 교수 측은 10여년 전 일을 피고인이 입증하지 못한다고 해서 유죄로 모는 것은 부당하다거나, 일부 활동 내용이 과장됐다고 해서 대학 업무방해로 연결될 수는 없다고 맞섰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부는 1심에서보다 더욱 촘촘하게 정 교수의 행위가 왜 중한 범죄인지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입시비리는 피고인 자신과 배우자의 인맥을 이용해 딸이 특정 기관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활동기회를 얻고 기관과 내용을 다소 과장하거나 후한 평가가 적힌 확인서를 발급받는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피고인이 본래 확인서 내용을 수정해 작성자의 서명을 받거나 △작성자에게 사실과 다른 내용의 확인서 작성을 요구하고 △활동의 책임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허위 내용을 알려주면서 확인서 작성을 요구한 후 다시 피고인이 임의로 변경하거나 △배우자(조국)의 허위 확인서 발급에 가담 △피고인 본인의 직책을 기재해 사실과 다른 확인서를 직접 작성 △대학 총장 명의의 표창장을 위조하는 범행까지 저질렀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단순히 입학원서나 자기소개서에 몇 줄 기재된 경력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들"이라며 "이 범행으로 딸 조모씨가 서울대 의전원 1차 전형에 합격하고 부산대 의전원에 최종 합격하는 실질적인 이익을 얻었다"고 말했다.
1심에서 "진실을 이야기한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고 판단한 것과 같은 지적도 나왔다. 2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은 이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 내내 당시의 입시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태도로 범행의 본질을 흐렸다"며 "피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선의로써 사실과 다른 내용의 확인서까지 작성해 주었을 사람들에게, 또 그 확인서들과 표창장이 진실하다고 믿었을 입학사정 담당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입학원서나 자기소개서에 기재된 경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교육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지만 그 전제로서 기재 내용과 증빙서류는 진실해야 한다"며 "그것이 입시제도의 근본 원칙이자 관련자들의 일반적인 행동규범이다. 이를 무너뜨린 피고인의 범행과 그 이후 태도에 대해 더 비난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