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벌인 강도행각의 주 대상이 바로 은행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은행은 대공황으로 삶이 피폐해진 서민들의 집과 땅, 가게를 담보로 돈을 빌려준 뒤 이를 갚지 못하면 가차없이 빼앗아 오히려 위기 속에서 배를 채웠다. 이런 은행의 행태에 분노하던 대중은 보니와 클라이드의 대담한 범죄행각에 묘한 대리만족을 느끼고 응원을 보내게 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 '분노의 포도'(1939)는 같은 대공황 시기가 주 무대로 농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은행의 행태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은행빚을 갚지 못해 가진 재산을 모두 은행에 빼앗기고 고향에서 쫓겨나게 된다.
작품 속 한 장면. 은행은 빚을 갚지 못한 농민의 집과 농토를 트랙터로 가차없이 갈아엎어 버린다. 농민은 저항하지만 은행의 심부름꾼일 뿐인 트랙터 기사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며 이렇게 말한다 "은행은 사람하고 달라. 사람이 은행을 만들었지만 은행을 통제할 수는 없어"
은행, 정부가 공인한 '이자놀이' 자격증 보유자
스타인벡이 심부름꾼의 입을 통해 묘사한 은행의 속성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놓고 채무자의 재산을 빼앗던 과거와 달리 알게 모르게 서민의 삶에 파고들어 이윤을 챙기는 방식이 좀 더 세련돼졌을 뿐이다.
사실 은행업 자체가 일반 대중에게는 좋은 이미지로 다가오기 힘들다. 근본적으로 은행업의 핵심이 '이자놀이'이기 때문이다. 낮은 금리로 예금을 유치한 뒤 이에 높은 금리를 붙여 대출해주는 '예대마진'이 은행의 주요 수익원이고 실제로 시중은행 실적의 대부분이 예대마진에서 나온다.
남의 돈을 빌린 뒤 다시 빌려주고 이윤을 챙기는 이런 손쉬운 돈벌이를 마다할 이가 있을까? 앞서 예로 든 대중의 비난, 심지어 혐오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은행을 소유하기 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시에 모두가 이자놀이에 뛰어들어 서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무법천지를 막기 위해 정부가 공인한 건전한(?) 기업 만이 은행을 세울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 공인 자격 취득이 끝은 아니다. 역사 속 수없이 재연됐던 은행의 탐욕과 횡포를 제어하기 위한 강력한 규제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다.
은행의 속성과 규제의 당위성을 길게 늘여놓은 이유는 바로 '카카오뱅크'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소위 대박 난 카카오뱅크 IPO(기업공개)를 통해 과연 누가 이익을 얻었는지, 그리고 이것이 과연 공정한 결과인지 따져보기 위해서는 장황하지만 이런 은행의 속성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융 대장주에 시총 11위 등극, 누가 돈 벌었나?
카카오뱅크의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모회사 카카오의 지분이 31.62%(기업공개 전 기준)으로 최대 주주다. 이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한국투자금융지주 자회사) 26.97%, 한국투자금융지주 4.65%, 국민은행 9.3%, 서울보증보험·우정사업본부·이베이코리아·SKYBLUE LUXRY INVESTMENT(텐센트 자회사) 각 3.72% 등이다.
이번 기업공개 과정에서 일부 조정을 감안하더라도 카카오의 지분가치는 9조원 안팎이다. 카카오의 납입 자본금이 7천억 원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출범 4년 만에 지분가치가 무려 12배 이상 급등했다. 유상증자 참여 시기 등에 차이가 있지만 주요 주주는 대부분 10배 이상의 수익률이 예상된다.
개인으로 보면 카카오뱅크 임직원 역시 이번 상장을 통해 많게는 수백억에서 적게는 수억 원의 차익을 남길 수 있게 됐다. 카카오뱅크는 1천여 명의 임직원에게 우리사주 1309만주를 배정했는데 임직원 1인당 4.9억 원 가량의 주식을 사들였다. 보호예수가 걸려 당장 매도가 힘들지만 이날 종가 기준으로 직원 1인당 평가 차익은 평균 4억 원이 넘는다.
여기다 윤호영 대표를 비롯해 카카오뱅크 임직원에게 제공돼 상장 전까지 미행사된 스톡옵션 수량은 267만주다. 스톡옵션 행사시 1주를 액면가인 5천 원에 살 수 있고 당장 차익실현이 가능하다. 52만주를 스톡옵션으로 받은 윤호영 대표는 300억 원 이상의 차익을, 다른 임직원들도 적어도 수억 원의 평가 차익이 예상된다. 물론 공모청약으로 재미를 본 투자자도 있지만 이들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하다.
'금산분리' 원칙 깨고 특혜에 특혜 입은 카뱅
카카오뱅크는 케이뱅크와 함께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은행업의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금산분리(금융자본인 은행과 산업자본인 기업 간의 결합을 제한)' 원칙을 깬 첫 사례다. 한마디로 원래 은행 설립 자체가 특혜인데 심지어 은행 설립이 제한된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은행 설립 자격을 얻은 특혜에 특혜를 입은 셈이다.
특히, 국내 주요 은행은 소유주가 없지만 카카오뱅크는 카카오라는 모회사, 그리고 이 모회사를 지배하는 오너가 존재한다. 한마디로 주인이 있는 은행이다. 오너 1인 체제인 재벌그룹의 황제경영과 문어발식 영역 확장을 비판해 오던 현 정부에서 카카오뱅크의 설립과 급성장은 이 때문에 이율배반적이다.
여기다 카카오뱅크는 기존 은행에 부과된 가장 큰 규제 가운데 하나인 '사회적 책임'을 면제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용'이다.
이번 상장으로 카카오뱅크 아래가 된 KB금융 등 주요 시중은행의 임직원 수는 1~2만명 선이다. 반면 대한민국에서 11번째로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이 된 카카오뱅크의 임직원 수는 1천여명에 불과하고 앞으로도 크게 늘어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 은행원은 많지만 카카오뱅크에 다니는 은행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기존 은행도 수익성 낮은 영업지점 폐쇄를 통해 인력 감축을 원하지만 금융당국은 고령자 등 금융소외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반면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은 처음부터 이런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시장은 카카오뱅크가 기존 은행과는 태생부터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이 주가에 반영됐다. 그런데 이런 특별 대우가 온전히 혁신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카카오뱅크 스스로 이룬 성과일까 라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더라도 카카오뱅크는 결국 은행이다. 은행업 자체가 그 시작점부터 특혜이고, 카카오뱅크 역시 이런 특혜 속에 성장한 은행이다. 성장의 과실을 나눠 먹는 그들만의 돈잔치가 공정하지 못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