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부부장은 한미연합훈련 비난담화를 "위임"에 따라 발표한다고 밝한 만큼, 북한의 연락채널 불응과 김여정 담화의 북한 내부공개 등 일련의 반발 대응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의 서신교환과 이에 따른 연락채널 복원으로 조성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가 한미연합훈련를 빌미로 한 북한의 반발로 다시 암초를 맞고 있다.
김여정 담화답지 않은 이례적인 담화 발표…'공식성' 강화
김여정 부부장의 이날 담화는 예전과 달랐다. 속마음을 그대로 담아내는 직설적인 표현, 때에 따라 비아냥대는 것 같은 어법, 비속어를 동원한 조롱조의 표현 등 그동안 김여정의 담화에 잘 드러났던 어법적 특성들이 적어도 이날 담화에서는 사라졌다.그 대신 한미연합훈련을 북한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비난하는 매우 공식적인 형식의 담화가 발표됐다. 백두혈통으로서 거침없는 표현을 가능하도록 했던 1인칭 주어인 '나'는 이날 담화에서 단 한 차례 사용됐다. "나는 위임에 따라 이 글을 발표 한다"는 대목에서였다. 나머지 대부분을 '우리'라는 주어로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북한에서 나오는 통상적인 담화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南 당국자들 배신적, 美 바이든 위선적, 국방·선제타격능력 강화할 것"
내용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국방력과 선제타격 능력강화"라는 향후 대응 방향에 중점을 뒀다. 김 부부장은 먼저 이번 훈련은 "우리 국가를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으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인 행동"이라면서, "미국과 남조선측의 위험한 전쟁연습은 반드시 스스로를 더욱 엄중한 안보위협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라고 압박했다.미국을 향해 "조선반도의 정세발전에 국제적 초점이 집중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예민한 때에 침략전쟁 연습을 한사코 강행한 미국이야말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장본인이며, 현 미 행정부가 떠들어대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 조건 없는 대화'란 저들의 침략적 본심을 가리우기위한 위선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남측을 향해서는 "이 기회에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는 말로 우리 정부에 대한 불만을 피력했다.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동안 언급이 없었던 주한미군 철수 입장을 다시 꺼내들기도 했다.
김여정 "위임에 따라 이 글 발표"…김정은 의중 반영?
김여정 담화 내부 보도로 주민들에게 알려…한미훈련 빌미로 대미·대남공세 강화
북한은 먼저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한 김여정 담화 전문을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등 내부매체를 통해 보도해 북한 주민들에게도 알렸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압박한 지난 1일 김여정 담화의 경우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만 공개된 것과 비교가 된다. 이에 북한은 조만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도 담화를 게재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연합훈련 비난과 향후 대응방안이 담긴 김여정의 담화를 일반 주민들에게 공개한 것은 한미훈련을 빌미로 대미·대남 공세를 더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남북정상의 합의에 따라 13개월 만에 남북연락채널이 복원된 사실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김여정의 담화를 전격 공개한 것은 한미연합훈련을 명분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로 가는 분위기에 대해 내부적인 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北 군통신선 등 남북연락채널 마감통화에도 불응…복원 2주만에 불통
북한은 아울러 이날 통일부 남북연락채널과 군통신선 마감 통화에도 응하지 않았다. 김여정의 담화발표에도 남북은 오전 9시 개시 통화를 평소처럼 진행하는 등 연락채널 정상가동을 확인했으나, 갑자기 오후 마감통화에서 북한이 불응한 것이다. 남북정상의 서신교환과 이에 따른 남북연락채널 복원에도 불구하고 한미연합훈련을 내세운 북한의 반발로 2주 만에 불통사태가 빚어진 셈이다.통일부 "北 동향 면밀하게 주시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할 것"
통일부는 김여정의 담화와 남북연락채널 불통과 관련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북한의 의도나 향후 대응 등에 대해서는 현시점에서 예단하지 않고 북한의 태도 등을 면밀하게 보면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통일부는 특히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의 긴장이 조성되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최근 남북 양 정상 간 친서 교환 과정에서 확인된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을 향한 의지가 존중되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관계 개선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담화는 대북적대시정책의 상징으로서 한미군사훈련의 완전 중단 없이는 대미, 대남관계를 강 대 강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는 점에서 통신 연락선 복원 이후의 남북, 북미대화 재개는 상당 기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 행위에 유감을 표한 대목은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유감 표시로 해석 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