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잠시 4월 초로 돌려보자.
새 시즌 개막을 앞둔 KBO 리그는 온통 장밋빛 기대 뿐이었다.
프로야구의 새 식구 SSG 랜더스는 메이저리그 스타 출신 추신수와 함께 인천에 상륙해 개막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KBO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던 2020년 체계적인 메뉴얼과 철저한 방역으로 한 시즌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는 자부심으로 또 한번의 완주를 자신했다.
10개 구단 선수들은 야구 팬이 직접 선정한 슬로건 "함께 해요 KBO! 이겨내요 코로나!"이 적힌 특별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에 나섰다.
또 2021년은 야구가 13년 만에 올림픽 무대로 돌아오는 해이기 때문에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빛 역사를 기억하는 팬들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잠실 개막전의 시구는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 맡았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지금의 KBO 리그는 그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모든 일은 지난 한달 사이에 벌어졌다.
NC 다이노스와 한화 이글스 선수단이 머물렀던 서울 숙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NC에서 확진자가 발생했고 여기에 두산 베어스 선수단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면서 리그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에 KBO는 도쿄올림픽 휴식기를 일주일 앞두고 리그 중단을 결정했다. 시즌 도중 일정 진행이 멈춘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후폭풍이 거셌다. KBO는 선수단에서 확진 사례가 나와도 어떻게든 시즌을 이어가겠다는 내용의 메뉴얼을 마련했지만 과연 이를 준수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터져나왔다. 또 특정 구단들에 지나치게 유리한 결정이 아니냐는 야구 팬의 불만도 컸다.
NC와 두산은 리그 중단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NC와 한화 그리고 키움 히어로즈 선수 일부가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어기고 술판을 벌였던 사실이 드러났다.
7월 들어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재유행 조짐을 보였기 때문에 프로야구에서도 확진자가 나올 여지는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청정구역임을 자신했던 KBO 리그 내 선수들이 방역 지침을 무시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이로 인해 다수의 선수가 KBO 상벌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박민우와 한현희는 도쿄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태극마크를 반납해야 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김경문호를 바라보는 시선을 싸늘하기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야구 대표팀은 총 6개 나라가 참가한 도쿄올림픽 야구 종목에서 4위에 머물렀다. 올림픽 기간에 발생한 온갖 이슈들은 야구에 대한 여론을 점점 더 악화시켰다.
그게 끝인 줄 알았다.
후반기 일정 재개를 하루 앞둔 9일 프로야구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키움은 9일 오전 외야수 송우현이 지난 8일 오후 음주운전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을 구단에 자진신고했다고 밝혔다.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KIA 타이거즈에서 일이 터졌다.
외국인투수 애런 브룩스가 미국으로부터 전자담배를 주문했는데 세관 검사 과정에서 대마초 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KIA는 브룩스가 관계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히면서 브룩스를 퇴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야구는 지난 한달 동안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야구 팬을 떠나 국민을 실망시켰고 올림픽 기간 동안 대표팀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10일 오후 6시30분 전국 5개 구장에서 KBO 리그의 후반기 일정이 시작된다.
야구가 다시 시작한다는 기대감도, 코로나19 청정구역이라는 안도감도, 세계적인 야구 강국이라는 자부심도 모두 흔들린 상태에서 KBO 리그는 일정을 재개한다.
야구는 다시 예전처럼 존중받을 수 있을까. 지난 한달 동안 잃은 게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