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형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13일 가석방 된다.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의결하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허가한 결과다.
이미 법원 판결이 내려진 국정농단 사건 외에도 여전히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이 부회장 관련 사건도 여러 건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법무부가 무리하게 정무적 판단에 따라 가석방을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각계에 적지 않다.
박범계, 이재용 가석방 허가…"국가적 경제상황 고려"
위원장인 강성국 법무부 차관을 비롯해 법무부 내·외부 위원 9명으로 구성된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는 9일 오후 2시부터 약 4시간30분 가량 심의를 거쳐 '8·15 광복절 가석방 대상자'를 선정했다.
심사위 선정 명단을 받아 최종 결정을 내린 박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수형자 810명에 대해 가석방을 허가했다"며 "특히 이번 가석방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에 대한 고려차원에서 이 부회장이 대상에 포함됐다.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은 사회의 감정·수용생활 태도 등 다양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이 부회장은 오는 13일 오전 10시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하게 된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본명 최서원)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지난 1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재수감 된 지 207일 만이다.
추가 수사·재판 사건만 4건인데…일단 가석방
이 부회장 가석방은 그와 관련된 추가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확정됐다.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파악된 추가 사건만 4건에 달한다.
아직 검찰의 처분이 내려지지 않은 사건은 2건으로, 이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관련 건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2015년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이 이 부회장의 지배력 확대를 목표로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결론 내리고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과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작년 9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 다만 이와 관련된 일부 혐의 사건에 대해선 아직 처분이 이뤄지지 않은 채 검찰에 계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하나는 경찰에서 최근 송치한 이 부회장의 프로포폴 투약 의혹 관련 사건이다. 중앙지검은 지난 6월 이 부회장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했다는 혐의에 대해 약식기소 했는데, 이후 경찰은 이 부회장이 지난해에도 의료 목적 외에 프로포폴을 투약했다고 보고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로 이송했다. 이 사건을 넘겨받은 중앙지검은 기존 건과 묶어 기소할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재판부에 정식재판을 열어달라고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다. 아직 추가 프로포폴 사건에 대한 검찰의 판단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 부회장과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건은 검찰이 이미 기소한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건과 프로포폴 사건 2건이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은 아직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고, 프로포폴 의혹 건은 아직 첫 공판조차 열리지 않았다.
법조계서도 "부적절" 비판
이처럼 처분이 이뤄지지 않은 사안도 다수인 만큼, 박 장관의 이번 가석방 결정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각계에서 나온다. 여권 성향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입장문을 내고 "국정농단과 승계작업에서의 불법행위로 인해 유죄를 선고받고도 관련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범죄자가 가석방된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문재인 대통령과 박범계 장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특히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국정농단의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가석방이 된다면 향후 앞으로 어떤 재벌총수가 법을 지킬 것인가"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사과와 박범계 장관의 사퇴를 촉구한다"고도 덧붙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성명을 내고 현재진행형인 이 부회장 추가 사건을 거론하면서 "재범 위험성이 상당하다"며 "박 장관은 삼성 재벌 흑역사의 동조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고수위의 비판을 내놨다.
법조계에도 법무부 본(本) 심사에 앞서 진행된 서울구치소 차원의 가석방 예비심사를 둘러싼 절차 하자 논란과 맞물려 이번 결정이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가석방 예비심사 실무를 규정하는 법무부의 가석방 업무지침(예규)에는 '예비심사 대상자에 대해 수사‧재판 중인 사건이 있는 경우 법원, 검찰 등 관련 기관의 의견 등을 조회해 예비심사에 반영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하지만 구치소 측은 검찰에 남아있는 일부 사건과 관련해 예비심사를 마친 이후에서야 뒤늦게 의견을 조회한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확인됐다.
법무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한 검찰 출신 인사는 "(법무부의 입장은) 업무지침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석방 절차를 서두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도 "추가 사건이 진행 중인 인사에 대해선 가석방을 원칙적으로 막는 규정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범계, 질의응답 없이 '브리핑 종결'…재계는 "환영"
박 장관은 이번 가석방 결과를 직접 나서 발표했지만, 질문은 받지 않은 채 준비된 설명문만 낭독하고 신속하게 퇴장했다. 그는 퇴근길에 이 부회장 가석방이 청와대와의 조율 결과인지를 묻는 질문을 받았지만 답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뒤따르는 만큼, 법무부 장관이 결정권을 쥐는 가석방이 대안 격으로 여권 내에서 조율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복역률 60%를 갓 넘긴 이 부회장이 최근 법무부의 완화된 기준에 따라 가석방 대상자로 선정된 건 이례적인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도 나왔지만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3년 동안 형기의 70%를 채우지 않은 가석방자는 244명이다. 점차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고만 설명했다. 전체 가석방자 가운데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극소수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재계에선 박 장관의 결정에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경제계는 이 부회장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허용해 준 이번 법무부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고 했고,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번 결정은 경영계의 입장과 국민적 공감대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매우 다행"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