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수목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는 혜리가 '잘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혜리는 99년생 '요즘 아이들' 답게 당차면서도 소심한 구석이 있는, 어딘가 엉뚱한 모태솔로 이담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활달하고 솔직한 이미지를 가진 혜리와는 본인 이야기처럼 싱크로율 80%를 자랑했다.
생각해 볼 점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친밀히 다가서는 자신의 성격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만약 '이담'이라면 '혜리'를 불편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런 의미에서 '간 떨어지는 동거'는 혜리에게 여러모로 성장을 이뤄낸 작품이다.
여전히 '응답하라 1988' 덕선이로 많이 기억되고 있지만 혜리는 감사할 뿐이다. 모든 배우들이 오랫동안 대중의 마음에 깊이 각인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또 다른 대표작을 만들겠다는 포부는 '역시 혜리다운' 마음가짐이었다.
어느덧 20대 후반, 혜리는 자신의 30대를 기대 중이다. 드라마와 예능을 오가며 바쁘게 보낸 20대를 보내고 조금 더 성숙한 30대로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조급하지 않게 스스로 여유를 갖고 돌보겠다는 다짐에서 훌쩍 자란 혜리의 한 뼘이 느껴진다. 다음은 혜리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A 좋아하는 웹툰이었고 그래서 이담 역이 왔을 때도 하고 싶었다. 물론 대본과 웹툰의 차이가 좀 있으니까 캐릭터가 각색된 부분이 분명히 있더라. 원작이 있어서 부담이 됐었던 것도 사실인데 처음 미팅하면서 작가님께서 원래 저를 생각하고 만든 캐릭터라고 하셔서 좀 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웹툰 특유의 사랑 받았던 이유가 있어서 그걸 드라마에 장점으로 잘 섞으려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제작진이 대본이 나왔을 때 웹툰과 같은 장면이 있으면 그걸 볼 수 있게 준비를 해주셨다.
Q 이담의 설정 자체가 '요즘 애들'이다. 혜리가 생각하는 '요즘 애들'이란 어떤 모습일까
A '요즘 친구들'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해보면 적극적이고 솔직하고, 자기 감정을 되게 신중하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 싶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 이외의 것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개인적인 부분도 많고, 트렌드에 민감한 친구라는 생각을 했다. 겉으로는 차가운 면도 있으면서 속으로는 굉장히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A 사실 화보 촬영을 좀 어려워하는 구석이 있는데 역시 장기용씨가 경험이 워낙 많으니까 너무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잘 해주더라. 그래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사전 제작 드라마의 장점이지 않을까. 홍보를 하거나 화보, 인터뷰 같은 일정을 할 때 친한 기운이나 분위기가 의도하지 않아도 잘 드러난다. '선암여고 탐정단'은 7년 전 쯤이었는데 그 때는 저도 연기한 지 얼마 안됐고 너무 신인 때라 여유도 없고 그랬다. 그래서 이야기도 잘 나눠보지 못하고 친해지지 못했다. 늘 멀리서 응원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 때랑은 다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역시 그 때는 어색하고 낯선 게 끝까지 있었다면 이번에는 서로 의지하면서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를 한 것 같다.
Q '혜리'하면 딱 떠오르는 활기차고 에너제틱한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응답하라 1988' 덕선이 캐릭터도 계속 회자되는 것 같은데 본인 생각은 어떤지
A 에너지가 좋은 게 제 강점이자 약점 같다. 시청자 분들에겐 너무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시청자 분들이 보고 싶은 것, 그리고 제가 잘 할 수 있는 게 그런 톡톡 튀는 외향적인 캐릭터 위주인 것 같다. 지금 나이에 할 수 있는 최선과 최고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 다른 연기도 언젠가 그런 타이밍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응답하라 1988'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는 작품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서운한 것보다는 감사함이 더 크다. 앞으로 연기할 캐릭터들도 다 제 모습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갈수록 시청자 분들의 마음에 남을 인생 캐릭터를 만드는 게 제 목표인 것 같다.
A 생각보다 제가 작품 사이 많이 쉬었다. 1년 동안은 '놀라운 토요일'을 하면서 지냈다. (웃음) 저 개인적인 시간도 많고, 그렇게 보냈었다. 보통 드라마가 끝나면 최소 6개월 정도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저 스스로 굉장히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현장에서 저도 모르게 쓰는 에너지가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자꾸 끝나면 콘센트를 딱 뽑은 것처럼 방전이 된다. 차기작인 '꽃 피면 달 생각하고'는 정말 유일하게 쉬지 않고 바로 들어간 것 같다. 욕심이 나서 선택한 작품이라 열심히 촬영 중이다.
Q '놀라운 토요일'에서 정말 마스코트 같은 활약을 펼치다가 하차했다. 최근에 '간 떨어지는 동거' 홍보 차 나갔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A 맞다. '놀라운 토요일' 촬영 마지막 날에는 시작하면서부터 막 눈물이 났다. 너무 아쉽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정적인 영향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제게 '놀라운 토요일'은 긍정적인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촬영하면서 행복한 시간이었고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하차할 때 아쉽긴 했지만 오히려 3년 동안 되게 쏟아 부었던 것 같아서 후련하게 딱 끝난 거 같다. 오랜만에 게스트로 나가니 방송을 하는 것도 좋지만 언니, 오빠들 오랜만에 보고 스태프들 오랜만에 보는 게 너무 반갑고 좋더라. 이 사람들 때문에 내가 행복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Q 어느 덧 데뷔 11년 차, 20대 후반이 됐다. 스스로 느끼는 변화의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A 최근에 제일 많이 느낀 건 여유로워졌다는 거다. 무엇인가에 쫓기지 않고, 조바심 내지 않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여유로움이 조금은 생겼다. 어떤 계기나 타이밍이 있었던 건 아닌데 나를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들려면 나를 좀 돌보고 챙기고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20대 마지막을 잘 보내고 과연 내가 어떤 30대를 맞을 지 기대도 크다. 또 제가 되게 외향적이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먼저 다가가고, 낯도 별로 안 가리는 편이지 않나. 이런 성격이면 누구든 불편해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담이를 연기하면서 저 같은 성격의 친구가 다가온다면 오히려 거리감이 생길 것 같더라. 그런 모습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혜리'를 돌아보는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