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가 마지막 자존심마저 와르르 무너졌다.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나선 도쿄올림픽에서 노 메달 굴욕을 안았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도미니카공화국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6 대 10, 재역전패를 안았다. 최종 4위에 머물며 메달이 무산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 2000 시드니 대회 때 동메달을 따낸 한국 야구는 2004년 아테니 대회 때는 이른바 삿포로 참사로 예선 탈락하며 올림픽에 나서지 못했다. 4년 뒤 베이징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며 한국 야구의 전성기가 도래했지만 올림픽에서 야구가 13년 만에 부활한 도쿄올림픽에서 참사가 재현됐다.
더욱이 지난 5일 미국과 패자 4강전 뒤 김경문 감독의 인터뷰가 논란을 빚은 상황. 김 감독은 당시 "13년 전에는 이 정도 부담은 없었고 즐겁게 한 경기 한 경기를 하다 보니까 연승이 이어졌는데 이번에 올 때 사실 꼭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그런 마음만 갖고 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매 경기 국민들과 팬들에게 납득이 되는 경기를 하자고 마음 먹고 왔는데 금메달을 못 딴 것에 대해서는 크게 아쉽지 않다"고도 했다.
물론 일본과 4강전까지 연속 패배한 선수들을 감싸려는 마음일 수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의 발언은 국가대표 선발과 무리한 투수 운용 등 그동안 지적된 문제들과 맞물려 팬들의 공분을 샀다. 특히 올림픽 출국 전에는 금메달을 목표로 한다는 발언과 비교되면서 더욱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이런 상황에서 동메달은 한국 야구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도미니카공화국과 화력 대결에서 밀렸다.
1회초부터 선발 김민우(한화)의 난조로 끌려갔다. 김민우는 선두 타자 에밀리오 보니파치오에게 2루타를 맞은 뒤 1사에서 훌리오 로드리게스에게 좌월 선제 2점 홈런을 허용했다. 뒤이어 후안 프란시스코에게도 초대형 우월 1점을 맞았다. 요한 미에세스에게도 볼넷을 내준 김민우는 강판했고, 좌완 차우찬이 구원했으나 안타와 볼넷으로 1사 만루에 몰린 뒤 희생타로 추가 실점했다. ⅓이닝을 소화김민우의 자책점은 4개로 늘었다.
2회초부터 등판한 고우석(LG)이 마운드에 안정을 찾아주면서 타선도 반격했다. 2회말 4번 타자이자 주장 김현수(LG)가 상대 44살 좌완 선발 라울 발데스를 2루타로 두들긴 뒤 박건우(두산)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았다. 김현수의 방망이는 4회도 불을 뿜었다. 발데스의 5구째 슬라이더를 통타,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1점 홈런을 터뜨렸다.
5회말에는 역전에 성공했다. 고우석이 마운드를 내려간 5회초 1점을 내줬지만 곧바로 빅이닝을 만들었다. 양의지(NC), 김혜성(키움), 박해민(삼성)의 연속 안타로 1점을 뽑아 발데스를 강판시켰고, 이어진 1사 1, 3루에서 허경민(두산)의 투수 땅볼로 또 1점을 냈다.
이후 박해민이 빠른 발로 3루 도루에 성공한 뒤 폭투 때 홈을 밟아 5 대 5 동점이 됐다. 흔들린 도미니카공화국 마운드가 김현수와 대타 오재일(삼성)에 연속 볼넷을 내줬고, 강백호(kt)가 중전 적시타로 역전을 만든 뒤 포효했다.
하지만 8회 맏형 오승환(삼성)이 무너졌다. 필승 불펜 조상우(키움)가 6, 7회 10일 동안 6경기 146구의 투혼으로 상대 강타선을 힘겹게 막아낸 보람이 허사가 됐다. 1사 만루를 자초한 뒤 폭투로 동점을 헌납한 오승환은 변화구에 약점을 보인 프란시스코에 직구 승부를 하다 2타점 2루타를 맞았다. 이어 미에세스에게 좌월 2점 홈런을 맞았다. 6 대 5의 스코어가 순식간에 6 대 10으로 역전되면서 선수들은 고개를 떨궜다.
한국은 마지막 9회말 김혜성의 안타, 박해민의 2루타로 무사 2, 3루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대타 최주환(SSG)이 뜬공, 이정후(키움)이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날 맹활약한 주장 김현수도 땅볼에 그치면서 경기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