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률 2할→기적의 4강' 女 배구, 불과 한 달 만에 무슨 마법 부렸나[도쿄올림픽]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4일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터키와 도쿄올림픽 8강전에서 공격을 성공시킨 후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강팀들의 승리 자판기였다. 승률 2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동네북이나 다름없었다.

그랬던 팀이 한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완전히 바뀌었다. 승리를 헌납했던 팀들을 상대로 도장 깨기라도 하듯 차례차례 부수며 패배를 되갚아주고 있다. 그랬더니 가장 큰 무대에서 세계 4강에 들었다.

한국 여자 배구가 그렇다. 대표팀은 4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터키와 8강전에서 3 대 2(17-25 25-17 28-26 18-25 15-13) 역전승을 거뒀다. 2012년 런던 대회 이후 9년 만에 4강 진출을 이뤘다.

터키는 지난 6월 20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예선에서 한국 대표팀이 1 대 3(23-25 25-20 17-25 18-25)으로 졌던 팀이다. 세계 랭킹도 4위로 한국보다 9계단이나 앞서 있는 강팀. VNL에서도 최종 3위에 올랐다.

하지만 한 달여가 지나 다시 맞붙은 결과는 달랐다. 한국은 VNL에서 무기력했던 그 팀이 아니었다. 뒷심에서 밀렸던 VNL과 달리 올림픽에서는 승부처였던 3세트와 마지막 5세트에 집중력을 발휘했다. 에이스 김연경(중국 상하이)이 세계 최고의 기량으로 공격을 이끌었고, 양효진(현대건설)을 앞세운 블로킹과 박은진(KGC인삼공사)의 강서브 등이 살아나면서 터키를 무너뜨렸다.

앞선 경기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숙적 일본과 올림픽 조별 리그 4차전에서 역시 3 대 2 극적인 대역전승을 거뒀다. 마지막 5세트 12 대 14로 뒤진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박정아(한국도로공사)의 불꽃 강타로 기사회생하며 내리 4득점, 승부를 뒤집었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A조 4차전 일본과 경기에서 승리를 결정 지은 뒤 환호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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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본과 VNL 예선에서도 0-3(18-25 18-25 25-27) 완패를 안은 바 있다. 일본은 고가 사리나(20점), 이시카와 마유(18점) 쌍포로 김연경이 11점을 올린 한국을 가볍게 제압했다. 그러나 역시 한 달여 만에 올림픽 무대에서 펼쳐진 재대결에서는 완전히 달라진 한국에 덜미를 잡혔다. 맞대결 당시 일본은 세계 5위, 한국은 14위였다.

세계 6위 도미니카공화국에도 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3 대 2 신승을 거뒀다. 그러나 지난 6월 1일 VNL에서는 0 대 3(23-25 26-28 18-25) 완패였다. 한국은 3승 12패로 VNL에 참가한 16개 국가 중 15위에 머물렀다.

도대체 VNL과 올림픽 사이의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터키와 8강전을 마친 뒤 비로소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김연경은 "소집 훈련부터 (5주 동안) VNL을 치르고 또 훈련까지 3개월 동안 외부 활동이 전혀 없었다"면서 "귀국해서는 자가 격리, 코호트 훈련,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훈련까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고 혀를 내둘렀다.

양효진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려줬다. 한창 신혼 중인 양효진은 "남편을 못 본 지 너무 오래 됐다"며 짐짓 한탄했다. 동료들과도 얘기할 시간조차 없는 빠듯한 일정 때문이다. 양효진은 "살찔 시간도 없다"고 운을 뗀 뒤 "눈 뜨면 밥 먹고 운동을 하고 계속 미팅하는 시스템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을 틈이 없다"고 했다.

4일 터키와 8강전에서 이긴 뒤 라바리니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경기 자료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도쿄=노컷뉴스

이탈리아 출신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의 엄청난 경기 분석 때문이다. 양효진은 "감독님이 비디오 분석을 엄청나게 하면서 상대 팀에 따른 맞춤 전략을 마련했다"면서 "전략에 맞는 훈련도 엄청나게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결과로 나왔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경기 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라바리니 감독은 틈틈이 기록지를 뚫어져라 보며 분석에 골몰하는 모습이었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선수 개개인의 특징에 맞는 훈련이 이어진다. 터키전의 숨은 공신 박은진의 강서브도 계산된 것이다. 라바리니 감독은 "터키 선수들의 신체 조건은 우리보다 좋은 게 사실"이라면서 "이를 이겨내기 위해선 기술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좋은 서브를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고 강조했다.

김연경은 "우리 모두 (박)은진이가 중요한 순간 서브를 잘 넣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서 "훈련할 때 다 했던 부분"이라고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어 "(정)지윤이가 (교체 멤버로) 들어와서 득점도 했는데 그런 패턴을 이미 다 훈련했던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철저한 분석과 맞춤형 훈련이 계획적으로 이뤄지니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연경은 "교체로 들어오는 선수들이 언제든 뛸 거라고 생각하면서 준비한다"면서 "조금씩이라도 모두 코트에 들어서는 그런 부분에서 원 팀이 됐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대표팀에게 VNL은 훌륭한 모의고사가 됐다. 라바리니 감독은 올림픽 최종 명단을 확정할 때 VNL 출전 멤버 중에서 변화를 줬다. 당시 부상으로 출전하지 않았던 김희진, 김수지(이상 IBK기업은행)를 불러 최종 점검한 뒤 선발했다. 대표팀 주축이던 레프트 이재영, 세터 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 폭력 논란으로 빠진 상황에서 새로운 멤버를 주전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대표팀은 오는 6일 오후 9시 세계 2위의 브라질과 4강전에서 맞붙는다. 대표팀은 브라질에도 VNL에서 0 대 3 완패를 안았고, 올림픽 조별 리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여자 배구 대표팀이 이번에는 브라질에 당한 패배를 설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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