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문호리에서 30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온 윤국주(47)씨는 까맣게 변해버린 벼이삭을 손에 쥐며 "다 말라 죽은 것"이라고 했다.
4일 오후 뙤약볕 아래서 그는 "올해처럼 하늘이 원망스러운 적이 없다"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50여 년을 산 윤석근(77)씨도 "한평생 농사만 지었는데 올해가 가장 가뭄이 심한 것 같다"며 "결국 비가 내리지 않아서인데, 아무래도 기후가 변한 것 같다"고 하소연 했다.
벼농사에 필요한 물 대부분을 빗물에 의존해야 하는 '천수답(天水畓)' 지역인 문호리는 올해 가뭄의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올여름 유독 짧은 장마에 지하수까지 말라버렸다.
곳곳에 펼쳐진 논바닥은 이미 거북이 등 껍질처럼 갈라졌다.
윤국주 씨는 "이상하게 다른 지역에 비가 엄청 쏟아지는 날에도 문호리에는 짧은 소나기만 내렸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윤씨는 "원래는 물이 차 있었는데 지금은 다 말랐다"며 "지금 상황에선 큰 하천에 용수로를 뚫어서 물을 끌어오는 방법밖엔 없다"고 말했다.
문호리 농민들의 걱정은 또 있다. 한 달 가까이 가뭄이 계속되면서 땅 속에 남아있던 염분이 땅 위로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호리는 40여 년 전만 해도 갯벌이었던 탓에 심한 가뭄 이후에는 염해가 뒤따랐다.
문호1리 이겸구(49) 이장은 "일대가 과거 갯벌이었는데, 지금처럼 가뭄이 계속되면 땅속에서 소금기가 올라와 벼이삭에 스며들 수 있다"며 "그럴 경우 아예 농사가 망하는 것"이라며 망연자실 했다.
'17일' 역대 세 번째 짧은 장마…전국서 피해 속출
하지만 올해 장마는 지난달 19일 끝났다. 역대 세 번째로 짧은 17일 장마였다.
계속되는 폭염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경기지역 저수율은 이미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경기도내 저수지 111곳의 평균 저수율은 55%로, 지난해(83%)보다 30%가량 줄어들었다. 이는 지난 30년간 평년 저수율(72%)보다도 20%가량 낮은 수치다.
가뭄 피해는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충남 서부권 젖줄인 보령댐의 저수율은 이날 오후 4시 기준 30.2%를 기록, '가뭄 주의' 단계에 진입했다. 올해 들어 보령댐 유역 강수량(555㎜)이 예년(734㎜)의 75%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인천 강화도에서는 저수지 17곳 중 2곳에서 녹조현상이 발생했다. 지난달 강화지역 누적 강수량은 83.9㎜로 지난해 같은 달(285.9㎜)보다 200㎜가량 적었다. 일평균 최고기온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도 이상 높았다.
한국농어촌공사 경기본부 관계자는 "올해 장마가 늦게 시작하고 빨리 끝나며 저수지에 공급되는 양도 줄어들었고, 가뭄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