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한국과 터키의 8강전이 열린 4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 신치용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장은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다.
오전 9시 경기라 서둘러 경기장으로 들어가던 신 촌장은 한국 취재진을 보자 대뜸 "오늘 승패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세계 랭킹 13위인 한국과 4위인 터키의 대결이라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 같다는 답에 신 촌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터키와는 해볼 만하다는 것. 신 촌장은 "우리가 A조 조별 리그 때 붙었던 세르비아는 현재 최정상급 팀"이라면서 "그러나 터키는 세르비아보다 떨어지는 팀"이라고 말했다. 세르비아는 세계 랭킹이 지난달까지 10위였고, 이 달 들어 8위로 올랐지만 터키보다는 여전히 낮다. 그럼에도 신 촌장은 대표팀에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과연 대표팀은 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또 다시 입증했다. 이날 한국은 터키에 3 대 2(17-25 25-17 28-26 18-25 15-13)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달 세계 7위였던 도미니카공화국, 5위였던 일본을 역시 풀 세트 접전 끝에 누른 데 이어 톱5에 드는 터키까지 격파한 것이다.
1세트를 내줄 때만 해도 터키의 낙승이 예상됐다. 터키는 블로킹 6 대 2의 우위와 상대 블로킹 위에서 때리는 타점 높은 공격을 앞세워 기선을 제압했다.
하지만 한국은 서브가 살아나면서 터키의 리시브를 흔들었다. 양효진(현대건설)의 블로킹까지 살아나 2세트를 따냈고, 3세트도 듀스 접전 끝에 28 대 26로 가져왔다. 4세트를 내줬지만 5세트 주장 김연경(중국 상하이)의 불꽃 강타와 '비밀 병기' 박은진(KGC인삼공사)의 서브를 앞세워 역전극을 마무리했다.
신 촌장은 "세르비아는 국제배구연맹(FIVB) 여자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당시 후보들을 내보냈다고 하더라"면서 "그래서 랭킹이 낮아졌지만 주전들이 복귀한 현재는 최강을 다툴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터키는 세르비아와 배구의 질이 다르다"면서 "우리 선수들이 조금만 분위기를 잡아주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터키는 새 에이스 에브라르 카라쿠르트(21), 제라 귀네스(22) 등 젊은 선수들이 적잖다. 김연경(33), 양효진(32·현대건설), 김희진(30·IBK기업은행), 염혜선(30·KGC인삼공사), 박정아(28·한국도로공사) 등 노련한 한국 선수들과 기 싸움에서 밀리면서 흔들렸다. 특히 5세트 승부처에서 잇딴 리시브 범실로 무너졌다.
신 촌장은 알려진 대로 한국 배구의 명장이다. 삼성화재의 실업 시절 슈퍼 리그 8연패와 겨울 리그 77연승을 이끈 신 촌장은 프로배구 원년(2005년) 챔피언을 비롯해 2007-08시즌부터 7연속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끌었다. 배구계를 떠나 있지만 보는 눈만큼은 정확했다.
여자 배구 대표팀에 대해 신 촌장은 "훈련 중이라 선수들과 많은 얘기를 하지 못했다"면서도 "그래도 지나가면서 선수들이 '배구장 오세요"'라고 하더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배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뿌듯하다"면서 "남은 경기도 잘 해서 꼭 메달을 따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연경은 경기 후 "그 누가 우리를 4강에 갈 거라고 생각했을까?"면서 "우리가 원 팀이 돼 4강에 올라 정말 기쁘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적어도 한 사람, 대선배는 여자 대표팀의 승리를 예상하며 뜨거운 응원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