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tvN 드라마 '방법'에서 '방법'(謗法, 사람을 저주해서 손발이 오그라지게 하는 것)이라는 저주의 세계를 그려낸 '방법 유니버스'는 세계관을 조금 더 확장해 오컬트 장르로까지 저변을 확대했다. 드라마 '방법'에서 사회에 만연한 작은 저주들인 '악플'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면, 영화 '방법: 재차의'(이하 '재차의')에서는 자본주의와 위계질서 탓에 벌어지는 저주와도 같은 사회 문제를 짚었다.
정의로운 기자 임진희 역으로 드라마에 이어 영화에도 출연한 배우 엄지원은 남을 저주하는 행위는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행동들로 나타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줬듯이 말이다.
이처럼 엄지원이 선택한 영화는 상업 영화라 할지라도 조금은 다른 메시지와 결을 가진 작품들이 많다. 그가 '재차의'를 선택한 것 역시 이러한 행보와 맞닿아 있다. '방법: 재차의' 개봉을 앞둔 7월 어느 날, 온라인을 통해 만난 엄지원에게 영화 이야기와 함께 '배우 엄지원'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봤다.
"삶 속에서 벌어지는 누군가를 가해하는 행위도 '저주'의 일종"
▷ 드라마와 영화 속 주요 소재 중 하나는 '방법'이다. 저주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남을 저주하는 행위라는 게 사회적인 현상이나 문화로 오기도 하는 거 같다. 저주라는 게 되게 큰 '저주'만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학교 폭력이나 따돌림도 하나씩 보태면서 쌓여서 큰 파장을 일으킨다. 삶 속에서 벌어지는 누군가를 가해하는 행동도 저주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되게 작은 행동이 그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내가 하는 말 한마디도 파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소한 것들에도 남을 저주하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함께 작업한 연상호 작가는 어떤 장점을 가진 사람이었나?
"드라마 '방법'을 통해 처음으로 함께 작업했는데, 같이 하면서 배운 점이 굉장히 많다. 너무나 스마트하고 열정적이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판단력, 추진력, 실천력과 에너지가 정말 내가 만나 본 어떤 사람보다 높은 거 같다. 일을 하는 속도도 놀라우리만큼 빠르고, 다양한 이야기를 머릿속에 갖고 있어서 같이 작업하기에 정말 매력적인 감독이자 파트너이자 작가다.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시작해서 그런지 모든 일을 쉽게 추진하고, 굉장히 남다른 사고와 판단력을 지녔다. 그런 부분이 연상호 감독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인 것 같다."
▷ 역시 드라마, 영화 모두 김용완 감독과 작업했다. 그는 현장에서 어떤 감독이었나?
"굉장히 조용한 카리스마를 가진 감독이다. 우리끼리 표현하기를 엄마와 아빠 같다고 해야 할까. 연상호 작가가 아빠라면, 김용완 감독은 엄마 같은 사람이다.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원하는 걸 조용하게 잘 관철하고 굉장히 꼼꼼하고 따스하다. 그와 함께하는 두 번째 작품이기에 연출 스타일에 대한 이해도도 훨씬 높아졌고, 일하기 편했다. 배우에게 많은 것을 맡겨주고, 모든 배우의 이야기를 정말 다 들어준다. 배우와 스태프, 영화를 정말 사랑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만의 컬러를 찾아가는 배우 엄지원의 길
▷ '기묘한 가족' '미씽: 사라진 여자'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잘 알지로 못하면서' 등 엄지원이 선택하는 영화는 분위기가 일반적인 상업 영화와 다른 결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조금 미세한 다른 결을 가진 유니크함을 찾고 싶어 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재미 면에서는 되게 재밌다고 생각해서 선택하는 거다. 이러한 것들이 묘한 매력을 준다. 관객들도 그런 것들에 매력을 느끼실 거라 생각하기에 선택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상업 영화가 나한테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나만의 컬러를 찾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 올해 텐트폴 영화 중 유일하게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40대 배우로서 충무로 여름 흥행 대전에 대표주자로 나선 부담감은 없는가?
"감사함과 책임감,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거 같다. 그렇기에 잘 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책임감이 있다. 그리고 사실 너무나 귀한 자리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감사함도 있다. 여름 정통적인 텐트폴 시장 안에서 여성 서사를 가진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가 개봉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도 있다.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당연히 있다."
▷ 중견 배우 선배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후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사실 선배들과 함께 연기하는 게 너무 좋다. 그 연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있다. 그런 재미가 있어서 좋다. 책임감 면에서도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짐을 나눠 드는 느낌이 있어서 든든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김혜숙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엄마'라 부른다. 모든 배우가 스스로 '내가 딸이야' '내가 아들이야' 할 정도로 모든 배우에게 정말 애정을 갖고 잘 해주신다. 내게 연기의 기본기와 진심을 알려주신 분이 김혜숙 선생님이다."
▷ 반면 후배들과 작업할 때는 어떤지 궁금하다.
"후배들과 작업할 때는 동료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함께 작업하는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재밌고 즐겁게 하는 편이고, 후배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다. 연기라는 게 결국 내가 해석한 진심과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게 핵심 키라고 생각하면, 그걸 표현하는 방법들이 정통적인 연기 방법과 요즘 친구들이 하는 방법이 다른 거 같다. 좀 더 캐주얼하고 편한 장점이 있어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된다."
"재밌는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내 몫"
▷ 엄지원이라는 배우가 가진 에너지와 내공은 할리우드에 진출하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본다. 요즘 보면 할리우드 진출이 불가능한 꿈도 아닌데, 이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미나리'를 보면서 영화적으로 좋기도 했지만, 정말 한국적인 연기를 통해서도 세계 시장으로 가는구나 생각했다. '기생충'도 그렇고 말이다. 그전에는 미국에서 연기하려면 미국적인 세팅을 하고 간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와 매력적인 요소로도 시장이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그 문화를 관통할 수 있는 흐름을 가진 사람은 연출자인 감독이겠지만, 그런 좋은 감독을 만날 행운이 주어진다면 불가능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윤여정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너무나 멋있다고 생각했다.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놔야겠다."(웃음)
▷ 앞으로 배우로서의 길을 나아가면서 이것만큼은 놓치지 않고 갖고 가고 싶다는 지향점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배우이기 때문에 재밌는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내 몫이라 생각한다. 상업적 재미가 될 때도 있고, 의미가 있는 작품이 내게 재미가 될 수도 있다. 그 두 가지를 잘 병행하면서 연기해 나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 아직 해보지 않은 역할 중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나?
"멜로도 그렇고, 코미디는 했지만 로맨틱 코미디라 불릴만한 장르도 못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경성학교'를 했지만, 완전 악역으로 대변되는 악역도 못 해봤다. 그런 해보지 않은 장르들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이 있다."
▷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정말 잘 만드는 감독이 많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과도 작업하고 싶다. 이해영 감독이 저랑 두 작품을 했는데, 다시 만나면 더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봉준호, 박찬욱 감독을 또 만나면 좋을 거 같고, '미씽: 사라진 여자' 이언희 감독도 한동안 못 봤기 때문에 같이 하면 재밌을 것 같다.
연상호 감독이 각본으로만 저랑 두 작품을 했다. 물론 전체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지만, 연출자와 배우로서는 만나지 못 했다. 내가 듣기로는 연출할 때 연기 디렉션을 아주 심플하면서도 직접 보여주며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는 작품을 같이 해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다."
▷ 연출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나?
"내가 프로듀서로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다. 그런데 감독이라는 직업이 옆에서 보니까 오랜 시간과 열정과 많은 것을 쏟아부어야 한 작품이 나오더라. 연출보다는 프로듀서를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은 있다."
▷ 영화 '재차의'는 드라마를 안 봐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
"우리가 이야기를 만들 때 드라마를 안 본 분이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영화 자체로 재밌는 영화를 만들자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시작한 작품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좀비물을 좋아하는 분, 액션을 좋아하는 분이 보시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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