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초고층 주상복합 엘시티(LCT) 특혜분양 리스트에 대한 부산경찰청의 수사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마무리 됐다.
리스트 관련자 128명 전원을 조사하는 등 5개월 동안 이어진 수사에도 혐의점을 하나도 밝혀내지 못해 수사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지적이다.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뇌물수수 혐의로 입건했던 엘시티 실질적인 운영자 이영복 회장과 부산시 전직 공무원 A씨 등 2명에 대해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검찰에 불송치하기로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의 엘시티 특혜분양 관련 수사는 앞서 지난 3월 초 유력인사 128명의 실명이 담긴 이른바 '엘시티 특혜분양 리스트'가 진정으로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CBS노컷뉴스가 확인한 이 리스트에는 현직 정치인, 전직 장관, 검찰 출신 변호사, 전 언론사 대표, 금융그룹 전 대표, 유명 기업인 등의 이름과 함께 선택 호실, 동·호수 등이 기재돼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진정은 "시행사가 웃돈을 주고 분양권을 매집해 유력인사에게 제공했고, 이 과정에서 계약금 대납이 이뤄졌으니 뇌물 의혹을 수사해 달라"는 내용과 리스트가 포함돼 있다.
이번 수사는 검찰이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엘시티 의혹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출범한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사실상 '1호 대형사건'으로 보고 수사의 칼을 꺼내 들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경찰은 해당 리스트와 관련한 진정이 주택법 공소시효가 지난 뒤 접수됐다는 이유로 공소시효가 남은 '뇌물수수' 적용에 수사력을 집중해왔다.
엘시티 분양권이 공직자에게 '뇌물'의 용도로 제공됐는지, 분양 계약금을 이 회장측이 대납해줬는지를 밝히기 위해 반부패수사대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128명 전원에 대한 1차 조사를 진행했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문건작성자와 리스트에 포함된 일부 인사와 이 회장 아들, 엘시티 신임 사장 등 수십 명을 참고인으로 직접 소환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3월 25일에는 부산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옥중 조사하기도 했다.
수사대는 또 타 부서에서 변호사 출신 경감급 수사심사담당관과 지난해 폭우로 시민 3명이 숨진 '초량지하차도 참사' 수사 담당 팀장을 비롯한 인력을 영입하면서까지 수사에 열을 올렸지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대상자 중 단 1명도 입건하지 못했다.
경찰이 수사절차상 이 회장과 함께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해 입건한 부산시 전직 공무원 A씨는 리스트에 없는 인물로 확인됐다.
경찰은 엘시티 아파트의 분양계약서 등을 모두 확보해 리스트상 인물의 아파트 취득내역을 확인했지만, 뇌물죄로 입건할 대상을 확인하지 못했다. 대신 과거 검찰이 특혜분양 의혹을 수사했던 43세대를 재조사해 A씨를 특정했다.
당시 검찰은 이 회장이 2015년 정당계약 당시 43세대에게 3천만원 예치금을 납부한 사전예약자를 제치고 미리 분양권을 주는 이른바 '새치기 분양'을 진행했다고 보고 주택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다만 검찰은 43세대는 특혜분양인 줄 몰랐다고 판단해 별도로 기소하지 않았다.
A씨는 이번 경찰조사에서 분양 계약금을 대출 등을 통해 스스로 납부한 사실을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찰은 뇌물수수 혐의가 없는 것으로 최종 결론 내렸다.
CBS노컷뉴스는 A씨와 연락은 닿았지만, 이번 경찰 수사에 대한 입장은 들을 수 없었다.
엘시티 특혜분양 수사가 기대와 달리 용두사미로 끝나자 시민 사회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부산참여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부산경찰청 엘시티 관련 수사가 매우 지지부진하다는 말은 오래전에 나왔다"라며 "문제의 핵심인 리스트 대상자들의 계좌추적 등 금융거래와 관련한 강제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역 유착비리는 지역에서 수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정인은 경찰이 검찰보다는 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 진정을 넣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보다 훨씬 더 못한 수사를 했다. 결국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경찰은 리스트 관련자들의 계좌거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과 견해 차이로 수사기간 5개월 동안 단 한 번도 금융거래 관련 압수수색을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담당 경찰은 "정말 힘든 수사였다"면서 "계좌 압수수색을 하지 못해 시행사로부터 분양권 관련 금융거래 자료를 임의 제출받아 수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택법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뇌물수수 혐의 적용에 주력해 리스트 관련자를 일일이 조사했지만, 뇌물죄가 적용되는 공직자 중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실제 분양권 거래로 이어진 사례는 없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