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간절히 바랐던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지만 부끄럽지 않게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쳤다. 맏언니도 눈물이 나왔지만 후배들에게 미소로 격려했다.
김연경(33·중국 상하이)이 이끄는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세르비아와 3, 4위 결정전에서 0 대 3(18-25 15-25 15-25) 패배를 안았다. 2012년 런던 대회 이후 9년 만에 동메달 결정전에 나섰지만 아쉽게 승리하지 못했다.
전력의 차이가 컸다. 세르비아는 193cm 장신 왼손 공격수 티야나 보스코비치가 무려 33점을 쏟아부으며 한국 코트를 맹폭했다. 김연경도 팀 최다 11점으로 맞섰지만 블로킹 2 대 7로 뒤진 높이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김연경도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나 이내 침울한 표정보다는 환한 미소로 후배들을 다독였다. 값진 동메달을 따낸 상대 선수들도 안아주며 축하했다. 맏언니의 격려에 후배 선수들은 눈물을 닦고 코트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올림픽 마지막 경기를 소중한 추억으로 남겼다.
경기 후 김연경은 "결과적으로 아쉬운 경기가 된 것 같다"면서도 "어찌 됐든 여기까지 온 거에 대해서는 너무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어느 누구도 사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리들조차도 사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했는데 (동메달 결정전에) 올 수 있게 돼 기분 좋게 생각히고 경기는 후회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눈시울을 붉힌 데 대해 김연경은 "(그동안) 고생한 것이 생각도 나고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주장으로서 씩씩하게 팀을 독려했다. 김연경은 후배들에게 한 얘기를 묻자 "웃으라고 했고, 결과적으로 잘한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웃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줬다"면서 "선수들이 고생한 게 있어서 눈물을 보인 것 같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여자 대표팀은 4개월여 동안 훈련과 경기만 치렀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배구연맹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를 5주 동안 치렀고, 귀국해서도 자가 격리와 코호트 훈련을 소화해야 했다.
특히 대표팀은 전력의 핵심이던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 폭력 논란으로 이탈하는 악재를 맞았다. 전력 약화도 VNL에서 16개 국가 중 15위에 처졌다. 올림픽 8강도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조별 리그에서 불굴의 투지로 잇따라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당시 세계 랭킹 14위였던 한국은 7위 도미니카공화국, 5위 일본에 대역전승을 일궈냈고, 4위 터키와 8강전에서도 짜릿한 5세트 승리를 거뒀다. 비록 2위 브라질, 6위 세르비아와 경기에 졌지만 국민들은 여자 배구 대표팀의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김연경은 "이번 경기를 통해서 선수들이 앞으로 해야 할 미래 방향들을 잡을 수 있던 거 같다"면서 "어쨌던 여기까지 끌어올렸던 여자 배구를 후배들이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국가대표로 뛰는 마지막 경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김연경이 마지막까지 주장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올림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