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한미훈련 중단 필요성' 언급한 국정원…더 복잡해진 방정식

박지원 국정원장. 윤창원 기자
국가정보원은 최근 북한 노동당 김여정 부부장이 한미연합훈련(연합연습) 중단을 촉구하는 담화를 낸 일에 대해 "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남북관계에 상응 조치를 할 의향을 표출했다"고 3일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는 오는 10일부터 위기관리참모훈련(CMST) 시작, 16일부터 26일까지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 연합지휘소훈련(CCPT) 진행을 전제로 연합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매년 연합훈련에 북한이 반발하는 일이야 수십 년 동안 계속 있어 왔지만, 남북 통신선 복원에 김여정발 중단 요구라는 특수한 상황이 겹치면서 정부도 난감해하는 와중 시간만이 흘러가고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 "대화 모멘텀 위해 한미연합훈련에 유연한 대응 필요"

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지난달 27일 군 관계자가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활용해 시험통화를 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남북은 지난달 27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을 복원했다. 하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김여정 부부장이 1일 담화를 내고 반발하면서 정부는 머리를 싸매고 있다.

김 부부장은 지난 3월 16일 담화에서처럼 "우리는 합동군사연습의 규모나 형식에 대해 논한 적이 없다"며 '방어적이고 연례적인 연습'이라는 우리 정부 입장과 관계없이 연합훈련 자체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어 "분명 신뢰회복의 걸음을 다시 떼기 바라는 북남 수뇌(남북 정상)들의 의지를 심히 훼손시키고 북남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본다"며 "우리 정부와 군대는 남조선 측이 8월에 또다시 적대적인 전쟁연습을 벌려놓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겠는가에 대하여 예의주시해 볼 것이다"고 경고했다.

일단 북한은 담화가 나온 지 이틀 뒤인 3일 바다에서 무선으로 교신하는 국제상선공통망 정기 통화에도 응답했다. 합동참모본부 김준락 공보실장(육군대령)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군 동향을 묻는 질문에 "현재까지는 추가로 설명드릴 만한 특이활동은 없다"고 답했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오전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가 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남북관계에서 상응조치를 할 의향을 표출했다"며 "향후 한미간 협의와 우리 측 대응을 예의주시하며 다음 행보를 결정할 전망이다"고 보고했다고 여야 간사들이 전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과거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북한은 연합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해 왔다"며 "한미연합훈련 중요성은 이해하지만,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고 비핵화라는 큰 그림을 위해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정부 운신 폭 좁혀버린 김여정…열흘 가량 남기고 시간만 흘러가

이를 두고 야권 등에서 '김여정 하명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결단을 내려야 할 정부도 난감한 모양새다.

사실 장병 90% 정도가 코로나19 2차 백신 접종까지 마쳤기 때문에, 군 내부적으로는 판데믹 상황에서도 훈련을 진행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국회사진취재단
하지만 남북 대화 기회가 열렸다는 점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상황을 고려, 축소 시행할 수는 있었다. 미국이 외교와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30일 "한미연합훈련 연기가 바람직하다"며, "연기를 해놓고 대북 관여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반도 평화 정착과 관련해 "지금이 한미 공조를 통해서 대북 관여를 본격화할 수 있는 적기"라며 "여기에 북도 유연하게 나와서 긴장보다는 유연한 대처를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바로 이틀 뒤 김여정 부부장이 낸 담화는 오히려 정부가 운신할 폭을 좁혀 버렸다. 정치쟁점화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훈련을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훈련을 하지 말라'는 담화가 실제로는 '훈련을 하라'고 하는 일과 비슷한 효과를 낸 셈이다. 담화를 안 내느니만 못한 상황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상응조치를 할 의향을 표출했다고 하지만 이는 정식 발표가 아니라 정보기관이 분석한 사항으로, 정부 입장에서는 어디까지 북한 의사를 신뢰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군축에는 신뢰가 필요한데 당장 시작부터 꼬인 셈이다.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대로 군사공동위원회를 열어 연합훈련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쪽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국방부는 2일 "현재까지는 남북 군사회담 제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김여정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연합훈련 축소조차 고려할 이유가 사라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비타협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통신선 복원이 곧 남북 당국 대화나 이산가족 화상상봉 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남북 대화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 하에 무리하게 연합훈련을 축소 조정하지 말고,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한국군 주도 연합작전 수행능력 검증) 작업 진척을 위해서도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하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정 센터장은 "내년에 북한에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방역협력을 해도 늦지 않다"며 "북한의 메시지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긴 호흡과 대전략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남북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3일 경기도 동두천시 주한미군 캠프 케이시에서 대기하고 있는 미군 차량들. 연합뉴스
국방부 부승찬 대변인은 담화가 나온 다음날인 지난 2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미는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과 관련해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상황, 연합방위태세 유지, 전작권 전환 여건 조성, 한반도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 지원 등 제반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긴밀하게 협의 중에 있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 또한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한미 양국이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중단이든 축소든 정상 시행이든 어떻게든 결단을 내려야 할 마지노선이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한미연합훈련을 둘러싼 방정식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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