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은 역대 최고의 육상 스타가 탄생한 무대였다.
압도적인 스피드를 자랑한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는 일찌감치 승리를 확신하고 두 팔을 활짝 벌린 상태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스포츠 팬들은 더욱 놀라게 한 건 그가 남긴 기록이었다. 결승선 20m 전부터 여유를 부렸음에도 전광판에는 9초69라는 당시 세계 신기록이 찍혀 있었다.
당시 우사인 볼트를 지도했던 글렌 밀스 코치는 "우승 세리머니 때문에 속도를 늦추지 않았더라면 9초52를 기록할 수도 있었다"며 아쉬워 했다.
우사인 볼트는 1년 뒤에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진지한 레이스'를 펼친 끝에 자신이 세웠던 세계 기록을 9.58초로 단축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육상 여자 100m 결선은 우사인 볼트의 명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자메이카의 일레인 톰슨-헤라는 레이스 중반 눈부신 스퍼트를 펼쳐 1위로 치고 나왔다. 일찌감치 승리를 확신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2위와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톰슨-헤라는 13년 전 우사인 볼트가 그랬던 것처럼 결승선 통과를 앞두고 세리머니를 시작했다. 왼손을 앞으로 뻗어 손가락으로 전방에 있는 전광판을 가리키면서 환한 미소와 함께 결승선을 통과했다.
기록은 10초61. 톰슨-헤라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미국)가 1988년 서울에서 작성한 종전 기록 10초62를 뛰어넘었다.
톰슨-헤라는 경기 후 대회 조직위원회를 통해 "왼손가락으로 전광판을 가리키는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다면 결승선을 더 빨리 통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스스로에게 감격적인 장면이었다. 그 순간의 기쁨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톰슨-헤라는 "언젠가는 저 기록을 깨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육상 여자 100m 결선이 2008년 베이징 대회를 떠올리게 하는 또 다 이유는 자메이카 육상의 힘을 또 한번 널리 알린 무대였기 때문이다.
자메이카는 금·은·동메달을 싹쓸이 하며 단거리 최강의 면모를 과시했다.
만 35세의 베테랑 셸리 앤 프레이저-프라이스는 10초74로 은메달을 땄고 세리카 잭슨은 10초76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과 2012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프레이저-프라이스는 이 종목 통산 세 번째 우승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자메이카는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도 육상 여자 100m에서 1-2-3위를 휩쓴 바 있다. 프레이저-프라이스가 우승한 가운데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한 공동 2위 선수들은 동메달 없이 나란히 은메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