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아무리 제재해도 버틸 수 있다'던 北의 변화 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전승절) 68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북중 우의탑을 찾았다고 조선중앙TV가 2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연락채널 복원에 이어 중국과 친선 관계를 다지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대화의 통로를 열어놓는 한편 중국과의 우호협력 의지를 다지면서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해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김정은 위원장이 6.25 전쟁 정전협정체결 68주년을 맞아 "7월 28일 (북중) 우의탑을 찾았다"며, "전체 조선인민의 이름으로 숭고한 경의를 표합니다. 조선인민을 대표하여 김정은"이라는 글씨가 씌어진 "화환이 진정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정전협정일을 맞아 우의탑 참배 '중국 배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 인민의 성스러운 역사적 투쟁을 피로써 지원한 중국인민의 고귀한 넋과 공적은 번영하는 사회주의조선과 더불어 불멸할 것"이라면서 "혈연적 유대로 맺어진 조중(북중) 친선은 공동의 위업을 위한 한길에서 대를 이어 굳건히 계승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와 대북제재 등 3중고에 처한 북한이 중국을 향해 우호친선의 메시지를 전한 것은 그동안 계속돼 온 일이지만, 김 위원장의 우의탑 참배 자체는 흔한 일이 아니다. 지난 2019년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북 때 양국 정상의 참배 이후 이번이 두 번째이다. 김 위원장이 그만큼 중국에 대해 신경을 쓴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전승절') 68주년을 맞아 28일 우의탑에 헌화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연설, 미국 자극하는 표현 빼고 중국에는 감사 인사

김 위원장은 전날 정전협정 체결일에 열린 7차 전국노병대회 연설에서도 중국인민군의 참전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했다. "고귀한 피를 아낌없이 흘린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표하며 지원군 노병 동지들에게도 뜨거운 인사를 보내 드린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같은 연설에서 자위적 핵 억제력과 국방력 강화와 같은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은 하지 않아 지난해 연설과 대조를 보이기도 했다.
 
미국을 의식하면서 한편으로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다지는 장면은 최근에 또 있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일본과 한국을 거쳐 중국을 방문해 왕이 외교부 장관과의 텐진 회동에서 다양한 현안을 놓고 격하게 대립하는 와중에서 김 위원장은 하남성 홍수피해를 위로하는 구두친서를 시 주석에 보내기도 했다.
 
북한이 지난 27일 평양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앞에서 제7차 전국노병대회를 열었다고 조선중앙TV가 2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노병대회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남북·북중을 거쳐 북미로 간 2018년 상황과 유사 양태, 결과는?

이처럼 남북관계의 국면을 전환하고 중국과는 혈맹임을 확인하는 것은 사실 2018년에도 있었던 일이다. 2017년 11월 화성 15호 시험 발사로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 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 발언 등 남북관계에서 180도로 국면을 전환했고, 이어 3월에는 중국을 찾아 시진핑 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이런 사전정지 작업을 거친 결과가 바로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을 만날 때는 전략적으로 반드시 중국에 설명을 하고 안심을 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남북연락채널을 복원하는 한편 중국과 혈맹을 다지는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가 2018년 상황과 양태는 다소 유사하지만 그 때와 같은 전면전인 전환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시절과 달리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주 시간이 많이 드는 실무적 협상을 준비하고 있고, 남측 정부도 내년 대선을 향해가면서 임기 말을 맞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럼에도 북한의 최근 동향은 전략적 인내라고 할 수 있는 그간의 '자력갱생 정면돌파전'에 비춰볼 때 다소 유연한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대강 선대선' 수동적' 기조에서 '기민하게 대응하는 주동성' 기조로 이동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3차 당 전원회의에서 "유리한 외부적 환경을 주동적으로 마련"하고, "시시각각 변화되는 상황에 예민하고 기민하게 대응"해, "조선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올해 초 8차 당 대회에서 미국을 향해 언급한 '강대강 선대선'의 기조가 미국의 입장에 따라 움직이는 다소 '수동적'인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예민하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주동성'을 강조한 것이다. 상황에 따라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최근 코로나19와 대북제재에 따른 어려움을 토로하고 식량부족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은 노병대회 연설에서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사상 초유의 세계적인 보건위기와 장기적인 봉쇄로 인한 곤란과 애로는 전쟁 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로 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대북제재의 영향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식량부족, 코로나19· 장기제재에 따른 어려움 이례적 인정

이런 발언은 물론 북한 내부의 어려운 상황을 코로나19이라는 재난과 대북제재라는 외세의 공격으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전쟁 상황에 못지않은 시련" 속에서 인민들을 최대한 자력갱생에 동원하고 독려하는 "북한 특유의 과장법"으로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아무리 제재를 해도 우리는 버틸 수 있다'는 식의 제재 무용론을 설파해온 북한이고 보면, 코로나19와 대북제재에 따른 시련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김 위원장의 발언은 확실히 과거의 '정면돌파전'과는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코로나19 방역. 연합뉴스

코로나19·식량 확보와 북미대화 두 마리 토끼 잡기 의도

이에 따라 북한은 남북관계를 열고 중국과의 혈맹관계를 다져 코로나19 백신과 식량지원 등 경제난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하고, 이를 통해 바이든 미 정부와의 핵 협상도 준비하는 전략을 발동 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북한의 동향에 대해 "북한이 식량문제 등 경제난을 해결하려면 대외교역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등 보건·의료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북한은 이 문제를 일차적으로 북중관계 강화를 통해 해결할 가능성이 크지만, 다른 한편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 변화를 모색하거나, 남북관계 자체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이익을 더 크게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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