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발단은 운동선수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안 선수의 짧은 커트 머리 스타일에서 비롯됐다. '쇼트컷'을 한 안 선수는 전라도 광주 출신에 여대를 재학 중이며 프로필 사진에 세월호 배지를 달았고, SNS에 '웅앵웅' '오조오억' 등 단어를 사용해 '페미니스트 같다'는 이유로 공격의 대상이 됐다. "왜 머리를 자르냐"는 한 누리꾼의 질문에 안 선수가 직접 "그게 편하다"라고 답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SNS에 인신 공격성 악플(악성 댓글)은 물론이고,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금메달을 박탈하라는 항의 전화 움직임까지 일었다. 안 선수는 자신에게 욕설 메시지를 보낸 한 누리꾼에게 직접 대응해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이에 대한양궁협회 공식 사이트에는 '안산 선수를 지켜달라'는 요구가 쇄도 중이다. 유명인들과 정치인들도 힘을 보탰다. 안 선수를 비롯한 모든 여성이 '쇼트컷'을 하거나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공격 당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또 이 같은 논란을 유발해 '페미니스트'에게 왜곡된 프레임을 씌우는 이들을 향해 "'페미니스트'를 혐오적 표현으로 왜곡하고 고립시키는 분위기를 감지하며 저 역시 여성이기에 이것을 관망하고 있기만은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페미니스트'는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관습적 자아를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서 독립적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며 "옛 사회가 강제한 지위와 역할의 변화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고 그로 인해 기회와 자격을 얻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에 글을 남기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남성과 여성의 편을 가르기 위함이 아닌 오로지 여성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고, 여성으로 태어나 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행하기 위해 다시 움직이는 것이기에 '페미니스트'의 의미가 왜곡된 상징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모두 '자유'"라고 밝혔다.
방송인 김경란 역시 29일 SNS에 '쇼트컷' 한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아…너무 열이 받아서 올려본다. #'숏컷'이 왜?"라는 글을 남겼다.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범잡'에 출연한 김상욱 교수는 SNS에 '쇼트컷' 스타일로 유명했던 배우 오드리 햅번의 사진과 함께 "여성 '숏컷'이 유행할 조짐이다. '숏컷'으로 아름다운 여배우를 꼽으라면 오드리 햅번을 빠뜨릴 수 없다. 자선과 기부로 말년을 보낸 진정 아름다웠던 사람이다. 오드리 햅번의 명언이라는데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고 조언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비롯한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안산 선수를 응원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주의를 지적했다.
29일 심 의원은 SNS에 "안산 선수, 힘내시라. 오늘도 거침없이 활시위를 당겨달라. 그 단호한 눈빛으로 세상의 모든 편견을 뚫어버리시라. 우리는 안산 선수의 당당한 '숏컷' 라인에 함께 서서 응원하겠다"며 "대한체육회는 현 상황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선수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압박에 단호히 대처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장혜영 의원도 이날 SNS에 "아무리 자기 실력과 능력으로 올림픽 양궁 금메달을 따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회에 만연한 이상 '숏컷'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실력으로 거머쥔 메달조차 취소하라는 모욕을 당한다. 이게 바로 낯뜨거운 성차별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비판했다.
이보다 앞선 28일 류호정 의원은 "여성 정치인의 복장, 스포츠 선수의 헤어스타일이 논쟁 거리가 될 때마다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여성들도 참 피곤할 것 같다. 저도 몇 년 동안 '숏컷'이었는데 요즘에는 기르고 있다. 그러고 싶어서"라며 "'페미 같은' 모습이라는 건 없다. 각자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여성이 페미니스트다. 우리는 허락 받지 않는다"라고 일침했다.
양궁 여자 국가대표인 안산 선수는 이번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혼성 단체·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