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들의 이유 있는 탈출…불법증식의 '유혹'

전시관람 용도변경의 딜레마 '불법증식'
개체수 관리 부실로 탈출 곰 파악 혼선
거듭된 위법행위에도 '솜방망이' 처벌
두루뭉술한 관리 규정, 열악한 사육환경
"상습범 집중규제, 몰수 보호시설 확충"

용인 곰 사육농장에서 지난 6일 반달가슴곰이 시설 바닥이 내려앉은 틈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박창주 기자
경기도 용인의 한 곰 사육농장에서 곰 두 마리가 탈출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건 지난 6일. 두 시간여 만에 한 마리는 사살됐고, 다른 한 마리는 찾지 못했다.
 
그동안 한강유역환경청과 용인시 등은 엽사를 투입했다가, 동물보호단체 반발로 생포하기로 방향을 바꾸는 등 20여일간 남은 한 마리의 행방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애초 농장을 탈출한 곰은 두 마리가 아닌 한 마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은 농장주 A씨의 말만 믿고, 있지도 않은 곰을 쫓은 셈이다.

 

불법증식 수단으로 전락한 '전시관람' 용도 전환

 
당국은 농장주 말만 믿고 20여일간 탈출하지도 않은 곰을 쫓아 헤매며 폭염 속에 인력 10여명을 투입하고 포획장비와 제보 현수막 등 예산 수백만원을 소진했다. 박창주 기자
처음부터 A씨의 거짓말이었다. 그는 왜 탈출한 곰의 숫자를 숨겼을까. 그 이유는 우리나라 곰 사육 정책 제도와 관련 법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27일 환경부와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전국 26곳의 농장에서 곰을 사육하고 있다. 곰 개체수만 400여마리에 달한다.
 
곰 사육이 시작된 시기는 지난 1981년. 이후 멸종위기종 보호에 대한 압박으로 정부는 곰 산업을 종식 대상으로 규정하고, 사육 곰에 대한 개체수를 줄여나가기 위해 '중성화사업'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곰 사육 농가들의 반발을 불식시키기 위해 곰을 사육용과 전시관람용으로 구분해 사육용은 중성화해 개체 수를 줄여 종식시키고, 전시관람용은 증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릴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게 화근이었다. 농장주들이 불법증식의 유혹에 빠지는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국의 허술한 관리 감독을 틈타 사육용을 전시관람용으로 속여 무분별하게 곰을 증식하는 데 이용했다.
 
실제로 A씨 역시 최근 5년간 곰 36마리를 무단 번식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고, 일부는 불법증식 사실이 확인돼 이미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이익 극대화' 욕망에 솜방망이 법은 무용지물

 
세살 된 어린 곰들 5마리가 한 케이지 안에서 부산하게 돌아다니고 있고 밑에는 배설물이 가득 쌓여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
불법인 줄 알면서도 농장주들이 곰을 불법 증식하는 이유도 법의 허술함에 있다.
 
당국은 사육용 곰의 처분을 독려하기 위해 10년생 이상 곰의 웅담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곰기름과 곰발바닥 등 불법가공판매까지 더하면 한 마리당 5천만원 이상의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불법 증식이 적발되더라도 몇 백만 원의 벌금에 불과해 당국의 눈을 속인 밀실 증식·도축이 횡행하는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당국은 실태를 알고도 불법증식 등을 사후 확인해 고발이나 행정처분에 그칠 뿐 근본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은밀하게 이뤄지는 불법행위를 잡아내기는 어렵다"면서도 "3~4년 뒤로 예정된 곰 보호시설 건립시점을 앞당겨 불법증식한 곰에 대해 몰수보전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씨가 이 같은 불법행위를 멈추지 않는 것도 이런 구조와 무관치 않다. 탈출했다고 속인 곰도 결국엔 사체 일부가 냉동고에서 발견됐다.
 
이에 정부도 관련 법을 개정해 다음 달부터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허가 없이 증식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기준을 3배 강화할 방침이다.

 

"두루뭉술한 관리·감독 체계와 시설 개선 시급"

 
A씨 농장에서 한 20년생 이상된 곰 한 마리가 폭염에 지친듯 드러누워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
관리·감독 지침이 두루뭉술한 것도 곰사육 현장의 불법행위를 부추기고 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감독 지침은 '연 1회 정기검사'와 '필요 시 수시검사' 등으로 느슨한 수준이다. 과실로 사육동물이 탈출하면 농장등록을 취소할 수 있지만 적용된 사례는 드물다.
 
시설기준 또한 △사육동물 특성에 맞는 적절한 장치 설치 △사고 시 조치 장비 구비 △탈출·폐사 대책 마련 등 다소 두루뭉술하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농장은 30년 넘게 노후화되고 비좁은 환경에서 곰들을 방치하듯 사육해 탈출사고나 폐사 등 악순환을 겪고 있다.
 
A씨 농장에 갇힌 곰들도 35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차광막 하나 없이 우리 안에 갇힌 채 생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법증식 등으로 인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감독과 처벌 기준을 강화하고, 용도별 구분 사육과 열악한 사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녹색연합 박은정 녹색생명팀장은 "중성화수술을 피할 수 있는 전시관람용으로 용도를 바꿔 무분별한 증식이 자행됐다"며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고 관련 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관리·감독 강화와 용도별 사육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차례 불법행위를 저지른 농장주에게는 상응하는 몰수나 등록 말소 같은 강력한 조치가 있어야 했는데 그간 관리·감독은 개체수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며 "그마저도 밀실에서 재증식된 개체는 감시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팀장은 "무엇보다 구례에 추진 중인 몰수 곰들의 보호시설 준공을 앞당기고 수용 규모도 기존 75마리 정도에서 대폭 늘려야 한다"며 "개별 사육시설 교체·확충과 CCTV 설치 의무화, 권역별 전담 관리인력 배치 등의 후속 조치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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