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앵무새' 김여정 막말 와중에도 남북 친서 왕래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이처럼 비논리적이고 후안무치한 행태는 (… 중략 …) 미국산 앵무새라고 칭찬해주어도 노여울 것은 없을 것."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3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의 '서해 수호의 날' 기념사 발언 에 대해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약 보름 전인 같은 달 16일에는 '3년 전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는 담화에서 남북관계의 전면 중단을 경고했다.
 
그는 한미 군사연습을 언급하며 남측이 '붉은 선'을 넘어섰다고 지적한 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나 금강산국제관광국의 폐지, 남북 군사합의서 파기 등 특단의 대책을 운운했다.
 

3월까지만 해도 '남북관계 전면 중단' 위협…"남측이 붉은 선 넘어"


그는 이미 지난해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충격 요법을 동원하며 대남 강경노선을 주도해왔기에 말 뿐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우려됐다. 만약 그럴 경우 한반도 정세는 2018년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돌아가 일촉즉발의 긴장 국면이 상시 조성될 수 있다.
 
북한이 지난해 6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표면적 현상과 달리 실제 남북관계는 지난해 저점을 찍고 느리게나마 반등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남과 북이 27일 오전 10시를 기해 그간 단절됐던 남북간 통신연락선을 복원하기로 하고 개시 통화를 실시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북측도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4월부터 수차례 친서 교환…한미정상회담 앞두고 대북정책 전달됐을 듯


얼음장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물밑에서 대화의 온기가 서서히 살아난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부는 남북 정상이 4월부터 여러 차례 친서를 교환했다는 것을 추측의 단서로 남겼다. 지난 4월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회담을 한 달 앞두고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가 거의 마무리 돼가는 시점이었다.
 
앞서 3월 17일에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방한해 한미 '2+2 회의'를 가졌고 4월 3일에는 중국 샤먼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한미 간에 합의를 앞둔 대북정책의 윤곽이 북한은 물론 중국에도 전달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바이든 정부가 전임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완전히 뒤집을 것이란 우려와 달리 비교적 긍정적 신호가 발신되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대북전단 규제 조치를 본격화하고 3월에는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에 불참을 결정하는 등 유화 제스처도 이어졌다.
 

'판문점 선언' 계기 친서 교환…이인영 장관 5월초 '변화 조짐' 발언 주목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 판문점 선언(4월 27일) 3주년에 즈음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고 김 위원장도 화답했다. 이와 관련,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5월 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반도 정세의) 오래된 교착 상태, 답보 상태를 깨고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는 때"라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윤창원 기자

북한이 대남·대미 비난을 이어가면서도 김여정 부부장 대신 실무급 수준에서 대응하는 것이 기존 대결적 태도에서 탐색적 자세로 전환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때마침 이 즈음 미국이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에 대북정책 설명을 제의했고 북한은 이에 '잘 접수했다'고 반응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5월 22일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 양국의 유연한 대북 접근을 공식화한 계기였다. 양국 정상은 판문점과 싱가포르 합의 존중, 남북 대화와 협력 지지를 지지하며 북한의 대화 복귀를 촉구했다.
 

국정원장 '의미있는 소통' 발언도 눈길…통신선 복원은 정세 변화 신호탄?


지난 달 9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국회 보고도 다시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남북 간에 '의미 있는 소통'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당장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불만을 나타내겠지만 이는 '통과의례'로서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하는 순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윤창원 기자

이런 평가가 맞다면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은 한반도 정세의 큰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이 하루 속히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다시 진전시켜 나가자는 데에도 뜻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수차례 친서 교환을 통해 남북관계 회복 문제로 소통해 왔고, 이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끊어진 통신연락선 복원에 합의했다는 사실은 추가적 조치의 여지가 있음을 말해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말기에도 안정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모를 리 없는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남측과의 대화를 마냥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백두혈통' 남매의 강온 역할분담…상황에 따라 긴장 고조 재연될 수도

 
결과적으로 김여정 부부장의 강경 모드와 달리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남북관계 회복을 논의해온 사실은 '백두혈통' 남매의 강온 역할분담 전략으로 이해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에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대남 군사행동계획 발표로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다 막판에 전격 보류시킴으로써 정세 주도권을 쥐려 했다.
 
따라서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서는 김여정 부부장이 악역을 자임해 긴장감을 다시 높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부부장은 성김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방한해 한미 워킹그룹 종료 지침 등에 합의한 지난달 22일에도 '꿈보다 해몽'이란 담화를 통해 미국의 보다 구체적 조치를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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