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이 직장 상사의 갑질 등을 호소하며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던 네이버를 감독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 실제로 일어났고, 사측이 이를 알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는 네이버(주)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27일 발표했다.
노동자 죽음 부른 '직장 내 괴롭힘', 미리 알고도 조사하지 않은 네이버
앞서 지난 5월 25일 네이버에서 근무하던 40대 직원 A씨가 자택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함께 발견된 유서로 추정되는 메모에는 직장 내 괴롭힘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중부지방고용노동청과 성남지청을 중심으로 '특별근로감독팀'을 구성해 지난달 9일부터 이번달 23일까지 직장 내 괴롭힘을 중심으로 감독을 진행했다.
우선 숨진 A씨에 대한 조사 결과, A씨가 임원급인 직속 상사로부터 지속적으로 폭언, 모욕적 언행을 겪고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의도적으로 배제될 뿐 아니라 과도한 업무 압박에 시달렸던 사실이 확인됐다.
노동부는 숨진 노동자와 같은 부서에서 일한 직원들의 진술 뿐 아니라 일기장 등 관련 자료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내용을 다수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상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주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는 것이 노동부의 판단이다.
특히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인지하면 지체없이 사실 확인을 위해 조사를 실시해야 하지만, 네이버는 숨진 A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을 알면서도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숨진 A씨 뿐 아니라 여러 직원들이 최인혁 최고운영책임자(COO)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이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최인혁 COO는 지난달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지만, 별도 법인인 네이버파이낸셜 대표와 해피빈 재단 대표 등 계열사 경영진 직위는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해도 부실 대응…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 내려
네이버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무방비 상태로 놓였던 것은 비단 A씨의 사례만이 아니었다.
노동부가 사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채널'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점검한 결과 운영 상태가 부실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신고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내린 사실도 확인됐다.
2019년 7월 관련 법 개정 이후 네이버에서 벌어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처리 절차·조치를 점검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사안도 '불인정'하는 등 불합리하게 처리된 사실이 확인됐다.
노동부가 찾아낸 사례를 보면 직속 상사가 모욕적 언행, 과도한 업무부여, 연휴기간 중 업무 강요 등을 벌였는데도 네이버는 부실하게 조사를 진행한 끝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분리 조치를 명목으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 노동자를 소관업무와 무관한 임시 부서로 보내고, 직무를 부여하지 않는 등 '불리한 처우'를 내린 사실도 확인됐다.
또 직속 상사의 의도적 업무 배제 등으로 외부기관에 의뢰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는데도 추가 조사 없이 불인정 처리한 일도 있었다.
네이버 직원 절반 이상 "직장 내 괴롭힘 겪어"… 44%는 신고 않고 혼자 참아
노동부가 네이버의 임원급을 제외한 전 직원 4028명 중 49.2%(1982명)에게 답을 받은 익명 설문조사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이 반복해서 발생했다는 답변이 나왔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2.7%)은 최근 6개월 동안 한차례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 10.5%는 최근 6개월동안 1주일에 한차례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반복적으로 겪었다고 답했다.
팀 동료가 외부인까지 있는 자리에서 뺨을 맞았고, 외부기관에서 가해자에게 면직 처분을 내리라는 의견까지 제시했는데도 회사는 8개월 정직 처분만 내린 바람에 피해자만 퇴사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44.1%는 '대부분 혼자 참는다'고 답한 반면, '상사나 회사 내 상담부서에 호소'한다는 응답은 6.9%에 불과했다. 이렇게 혼자 참는 이유로 '대응해봤자 해결이 안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절반 이상(59.9%)에 달했다.
폭언·폭행의 경우 응답자 중 8.8%가 직접 피해를 경험했다고, 19%는 동료의 피해를 보거나 들었다고 답했다. 또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서도 3.8%는 본인이, 7.5%는 동료가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노동부는 폭언·폭행 및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신고 절차를 안내하고, 특별감독 이후에도 신고가 접수되면 별도로 조사할 방침이다.
3년새 가로챈 수당만 86억여원…임산부에게 시간외·야근·휴일 근무 시켜
노동부가 노동관계법 전반에 대해 점검한 결과 네이버가 최근 3년 동안 전·현직 직원에게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 금품 86억 7천여만원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또 최근 3년 동안 임신 중이었던 여성 노동자 12명에게 시간외 근로를 시키거나, 산후 1년도 지나지 않은 노동자에게 인가 없이 야간·휴일노동을 무단으로 시킨 사실도 확인됐다.
이 외에도 연장근로 한도 위반,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근로조건 서면 명시 위반,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 임금대장 기재사항 누락 등 기본적인 노동관계법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고 있었다.
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 임금체불, 임산부 보호 위반 등 노동관계법 위반사항은 사건 일체를 검찰로 송치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개선 방안과 직장 내 괴롭힘 재발 방지계획을 수립하여 제출하도록 지도하고, 관련 조사 내용과 진단 결과를 네이버 직원들에게 공개하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네이버를 포함한 IT 업종의 장시간 노동 문제가 여러 차례 지적됐던 점을 고려해 유연근로제 등을 활용하돌고 지도하기로 했다.
노동부 김민석 노동정책실장은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주요 IT기업 대상 간담회를 통해 기업 문화를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근절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도, 조사, 근로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