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간 이른바 '백제 발언' 논란이 25일 '지역주의 논쟁'으로 확산되면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판을 흔드는 모습이다.
이 지사와 이 전 대표 뿐 아니라 다른 주자들까지 뛰어들었고, 당내에서도 비판을 쏟아내며 공방은 점점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다. 우선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출신 지역으로 편이 갈라지는 듯한 모습까지 나왔다.
여당 대선 주자 중 양강의 '백제 공방'에 가장 먼저 참전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자신과 함께 호남 주자인 이 전 대표의 편을 들었다. 정 전 총리 역시 이 지사의 발언을 '호남 불가론'으로 읽고 대응한 것이다.
앞서 이 지사가 지난 2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7월 30일 당권주자였던 이 전 대표와 만나 '한반도 5천년 역사에서 백제 쪽이 주체가 돼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 (이 전 대표가) 나가서 이긴다면 역사'라고 말했다"고 한 발언을 이 전 대표 측이 '호남 불가론'으로 해석해 맞공세를 폈고, 논란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정 총리는 전날 SNS를 통해 "가볍고 천박하며 부도덕까지 하기 한 꼴보수 지역 이기주의 역사 인식이며 정치력 확장력을 출신 지역으로 규정하는 관점은 사실상 일베와 같다"고 이 지사의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정 전 총리는 그러면서 "제주, 강원, 호남, 충청 출신은 통합의 주체도 국정의 주체도 못 된단 말인가? 이번 발언으로 이 후보는 스스로 가장 확장력 없는 퇴행적이고 왜소한 인식의 후보임을 입증했다. 이 후보의 인식은 우리 사회의 상식 있는 보통사람들과 정치의 중원에서는 결코 통용될 수 없는 석기시대의 사고"라고 비판했다.
정 전 총리는 이날도 기자들과 만나 "(이 지사의 발언은) 지역적 확장성이라는 얘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지금 민주당이 지역주의를 거론하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던 선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거듭 지적했다.
반면, 또 다른 주자인 김두관 의원은 이날 이 지사를 두둔하고 나섰다. PK(부산.경남) 출신 주자인 김 의원이 TK(대구.경북) 출신인 이 지사를 돕고 나선 모양새다. 김 의원의 지원사격에 이 지사는 "참 답답하던 차,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댓글로 화답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를 향해 "정말 왜들 이러시나. 지역주의를 불러내지 말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재명 후보의 '호남불가론'과 관련해 이낙연 후보 캠프 대변인에 이어 정세균 후보까지 나서길래 정말 심각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앞뒤를 보니 이재명 후보 인터뷰는 그런 의도가 아닌 게 분명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백제 발언 논란에 대해 "'이낙연 후보가 승리하면 새로운 역사가 된다'며, 당선을 기원한 것을 호남불가론으로 둔갑시켰다. 이건 군필원팀 사진보다 더 심한 악마의 편집"이라며 "군필원팀은 열성지지자가 만든 거라지만 이번엔 캠프 대변인과 후보가 직접 공개적으로 발언했다는 점에서 훨씬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박용진 의원은 이 지사와 이 전 대표 측 모두를 비판하며 결을 달리했다. 추 전 장관은 전날 온라인 북 콘서트에서 두 후보의 네거티브 공방전에 대해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십시오"이라며 "서로들 총을 겨누고 팀킬같이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의원도 이날 서울 중구 쪽방촌을 찾은 자리에서 "국민은 민생을 살리라는데 정치는 혈통만 따지고 있다"며 "4차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라는데, 백제시대 얘기에 머물러있다"고 양측 모두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민주당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며 "나는 오직 민생, 오직 미래만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백제 공방' 발언은 대선 주자들 간 싸움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과 여권 관계자들까지 참전하며 커지고 있다.
김종민 의원은 이날 "의도가 선의라는 걸 알겠지만 인식과 논리에 문제가 있다"고 이 지사를 비판했다. 김 의원은 "호남출신은 대통령되기 어렵다는 인식, 사실이 아니다"며 "오래전부터 호남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망국적 심리전의 논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오직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만이 5천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지역패권을 추구했을 뿐"이라며 "인구수 때문에 호남이 어렵다는 현실론도 이제는 낡은 얘기로 유권자 의식이 많이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대중 대통령의 3남 무소속 김홍걸 의원은 "이재명 지사의 발언은 호남이 중심이 되어 통합을 이루면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취지였고 또 현재 후보들의 확장성을 비교해서 얘기한 것"이라며 "호남불가나 차별을 얘기한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이 지사를 두둔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이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망국적 지역감정을 부활시키고 같은 진영에 상처를 입히는 정치인으로 낙인찍히지 않길 바란다"며 "김대중 대통령을 이용하지 말라"고 엄중 경고했다.
한편,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이날 가진 취임 100일 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대한민국이 다시는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게 망국적 지역감정"이라며 "지역주의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 세력은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