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공약까지 '7년' 걸린 '이재명표 기본소득'

강남훈 교수, 2014년 '성남시 특강'이 시발점
이재명,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공약'에도 기본소득 포함
3 차례의 국제컨퍼런스, 80여 편의 연구보고서…해외언론도 '주목'
"기본소득에 대한 단순 비방보다는 진지한 토론이 국민 위하는 길"

이재명 지사가 기본소득 지방정부협의회에 참석해 '가본소득은 공정'이라는 구호를 들고 있다. 경기도 제공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2일 '기본소득'을 대선 공약으로 공식 발표했다.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겐 한 해 200만원, 전 국민에겐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지사가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을 인식한 뒤 이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기까지는 7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로 떠오른 만큼 향후 대선국면에서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학계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토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강남훈 교수, 2014년 '성남시 특강'이 시발점

이 지사가 기본소득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성남시장 재선 직후인 지난 2014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남훈 한신대 교수(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은 성남시청을 방문해 시 간부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특강'을 펼쳤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 자리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 때부터 기본소득에 대해 본격적인 학습에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 성남시 행복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은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한 이재명은 특히 소시민들을 위한 정책 발굴을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그 과정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했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이같은 관심이 정책으로 이어진 첫 사례는 2015년 10월에 발표된 '성남시 청년배당'이다.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해온 19~24세 청년에게 1인당 분기별 25만원씩 연간 100만원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이재명 시장은 정책을 발표하면서 "청년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해 취업과 자기계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년배당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유자산으로부터 생기는 이익을 청년에게 배당하는 정책"이라며 '공유부 배당으로서의 특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시말하면, 토지와 환경, 문화, 제도, 지식 등 공유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정부분을 시민이 배당으로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지사는 2016년 10월에는 다니엘 라벤토스의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이한주 원장과 공동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재명 지사가 2019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잏ㅆ다. 경기도 제공

이재명,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공약'에도 기본소득 포함

이재명 지사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기본소득'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그는 당선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일자리가 주는 대량실업사회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논리는 안된다. 보편복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생긴다"며 "보편복지를 넘어서는 새 정책으로 지금까지 논의된 것으로는 기본소득만한 게 없다"고 밝혔다.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이후,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그의 준비는 보다 정교해졌다.

먼저 도지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대학교수와 도의원들이 참여하는 기본소득위원회를 설치했다. 기본소득 정책의 실행 계획과 정책 조정, 기본소득 관련 사업의 기획·조사·연구·평가, 도민 교육·홍보 등을 총괄하기 위해서다. 성남에서 시작된 청년배당정책도 경기도 전역에서 '청년기본소득'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촉발된 골목상권의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마련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도 지금까지 2차례 지급됐다. 이 지사는 "경기도 2차 재난기본소득 보편지급이 지역화폐 가맹점 10곳 중 8곳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며 "소멸성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농민의 생존권 보장과 소득불평등 완화, 그리고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라는 목표로 도입된 '농민기본소득'도 오는 10월부터 농민 개인에게 매월 5만원씩 지역화폐로 지급될 예정이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인 'THE DIPLOMAT'에 소개된 경기도 기본소득. 경기도 제공

3 차례의 국제컨퍼런스, 80여 편의 연구보고서…해외언론도 '주목'

2019년부터는 '사람을 사람답게, 기본소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경기도 기본소득 박람회'도 개최하고 있다. 특히 세 차례의 기본소득 국제컨퍼런스에는 국내외 기본소득 전문가 68명이 참여했다. 여기에는 스티클리치와 바네르지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도 포함됐다.

해외 기본소득 정책 학술대회에서도 경기도가 추진하는 기본소득은 주요 관심 대상이다. 경기도는 올해에만 모두 4 차례 해외 학술대회에 참여했다.

경기도 산하 경기연구원도 기본소득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2018년 '제대로 된 기본소득, 경기도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80편이 넘는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이한주 원장은 "그동안 꾸준한 자료 축적과 보고서 발표, 해외 학술대회 참여 등으로 경기연구원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기본소득 연구의 메카'로 떠올랐다"고 자평했다. 이어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브라질 마리카시 등과 공동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경기연구원과 함께 남기업 소장이 이끌고 있는토지+자유연구소도 기본소득과 재원 마련 방안 등에 대해 연구를 진행 중이다. 남 소장은 "기본소득제는 이미 도래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경제정책이자 복지확대정책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실험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스위스, 핀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인도, 케냐, 독일 등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 중이다.

해외 주요 언론들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주도하는 '기본소득'과 '지역화폐'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은 지난해 9월 24일 이재명 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본소득, 한국에서 높아지는 도입론…경기도지사 "복지와 경제, 양쪽에 유효">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앞서 16일에는 미국의 국제문제 권위지 '포린 폴리시'(FP)도 '코로나가 한국 빼고 모든 경제를 무너뜨렸다' 제하의 서울발 기사에서 경기도의 지역화폐 효용성을 극찬했다.

지난해 6월 13일에는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매체인 더디플로맷에 '코로나19 이후 기본소득 진지하게 검토하는 한국'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캐나다 아시아태평양재단 김동우 연구원은 이 기고문에서 "기본소득이 한국에서 완전히 도입될 때까지 더 많은 토론과 선거, 다양한 유형의 실험 등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842명으로 최다기록을 경신한 22일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역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이날 집계에는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장병 확진자 수가 일괄 포함됐다. 국내 발생 확진자만 따져보면 전날보다 200명가량 줄었다. 박종민 기자

"기본소득에 대한 단순 비방보다는 진지한 토론이 국민 위하는 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같은 세계적 흐름과 그 동안의 연구 결과, 그리고 경기도에서 진행된 다양한 정책 성과 등을 바탕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자신의 대선공약으로 발표했다.

구체적인 로드맵을 보면, 지급 첫 해인 2023년에는 '청년 125만원·전 국민 25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을 추진한다. 이어 임기 내에 '청년 200만원·전 국민 100만원'으로 늘리는 단계적 방안이다.

이 지사는 특히 "19세부터 29세까지의 청년 약 700만명에게는 보편 기본소득 외에 연 100만원을 지급하겠다"며 "보편 기본소득과 청년 기본소득이 정착되면 청년들은 11년간 총 220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재원 마련 역시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이 지사는 △재정개혁과 예산절감, 우선순위 조정으로 연 25조원 이상 마련 △연 60조원 이상의 조세감면을 순차 축소해 25조원 이상 마련 △국토보유세·탄소세 등 교정과세 도입 △일반적 기본소득목적세 도입 등 단계별 방안을 제시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 정책에 대해 "소득 재분배, 소득양극화 완화, 낙인 배제, 노동의욕 제고 등 경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가 이같은 내용의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하자 벌써부터 정치권에서는 거센 공방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불공정, 불공평, 불필요한 3불 정책(정세균 전 총리)', '경제활성화에 도움 안 되는 갈팡질팡 기본소득(이낙연 전 대표 캠프)'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야권도 이재명표 기본소득에 날을 세우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나쁜 포퓰리즘(유승민 전 의원)', '전국민 외식수당(최재형 전 감사원장)', '그리스 좌파 포퓰리즘 정권의 파노라마(홍준표 의원)' 등 거친 용어를 동원한 맹공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감소와 복지 대책으로 이미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만큼 이참에 건설적인 정책 토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지난해 당내 정강정책 1호로 '기본소득 도입'을 명문화한 바 있다.

이재명 지사 측 인사는 "기본소득이 갑자기 대선 공약으로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며 "7년이라는 긴 세월의 자료 축적과 연구를 통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재명표 기본소득에 대한 단순 비방보다는 진지한 비판과 토론을 통해 정책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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