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의 막이 드디어 올랐습니다. 23일 밤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회식에서 17일 동안 열전을 밝힐 성화가 타올랐습니다. 앞서 31번의 다른 대회보다 1년을 더 기다렸던 대회가 마침내 시작된 겁니다.
하지만 성화만큼 대회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습니다. 워낙 코로나19 대확산의 여파가 크기 때문입니다. 대회 1년 연기 역시 코로나19가 원인이었던 도쿄올림픽은 전체 경기의 96%를 무관중으로 치릅니다. 당초 최대 780만 장까지 예상했던 대회 티켓 판매는 고작 0.5%인 4만 장이 그쳤습니다.
개회식부터 역대 최초로 무관중으로 진행됐습니다. 6만5000석 관중석이 텅 비어 있는 개회식은 지금껏 세상에 없던 낯선 모습. 중국의 중화 사상을 쏟아부었던 베이징, 문화 대국 영국의 여유가 넘쳤던 런던,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을 밀어붙였던 소치, 남미 대륙 브라질의 열정이 느껴졌던 리우데자네이루, 남북한이 한반도의 감동을 전 세계의 알렸던 평창까지. 그동안 현장 취재했던 올림픽은 개회식에서부터 대회의 특징을 한껏 느낄 수 있었지만 이번 도쿄올림픽은 기대보다는 당혹감과 우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 취재진의 일정은 개막 전부터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입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받아야 했던 코로나19 검사는 어차피 감수해야 할 부분. 그러나 공항에서 미디어 호텔에 들어설 때까지 올림픽 분위기가 이렇게 나지 않는 대회는 처음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입국장에서 얼핏 봤던 올림픽 마크를 빼면 도쿄 도심부에서 마스코트를 눈에 씻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19로 긴급 사태가 발령된 일본에서조차 관심이 없는 올림픽.
3일 동안의 자가 격리 역시 그동안 대회에서는 겪지 못했던 일입니다. 취재진은 3일 간 호텔에만 머물며 타액 채취를 통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루 세 끼는 하루 15분 동안 허락되는 편의점 방문을 통해 먹거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마침내 본래 목적인 경기 취재를 하나 싶었지만 이마저도 처음 겪는 벽에 부딪힙니다. 취재진은 모든 경기장 취재를 사전에 신청해야 하는 겁니다. 본래 올림픽은 거의 모든 종목을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습니다. 남자 육상 100m나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등 엄청난 관심이 몰리는 몇몇 종목만 '하디 디맨드'로 정해 취재 인원을 제한합니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모든 종목 취재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사전 신청을 해도 쉽지 않습니다. 3~4일 전에 취재 신청을 해도 어떤 종목은 취재 승인이 나지 않는 겁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승인이 나지 않으면 경기장 출입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장시간 비행은 물론 코로나19 검사와 격리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현장 취재를 위해 도쿄로 왔는데 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겁니다. 이러려면 왜 아이디 카드를 발급하고 일본까지 오라고 한 건가요?
물론 조직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23일 양궁 경기가 열린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 미디어 센터는 2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약 270평 면적에 많은 취재진으로 거리 두기는 무색해졌고, 텐트형 센터의 무용지물이 된 에어컨에 업무와 식사를 하는 동안 마스크를 벗는 취재진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 취재 제한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조직위의 방역에 일관성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취재진이 숙소에서 경기장으로 이동할 때 이용하는 미디어 셔틀 버스는 만원이 되기 일쑤입니다. 특히 메인 프레스 센터(MPC)로 이동할 때도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상황인데 적잖은 취재진이 서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섭씨 30도가 넘는 땡볕에 30분이나 기다려서 타야 하는 버스 안은 취재진으로 그득합니다. 각국 취재진은 분통이 터집니다.(지금까지 올림픽은 미디어 숙소에서 MPC로 버스 한 번이면 도착했지만 도쿄처럼 갈아타야 하는 경우도 처음입니다.)
MPC 역시 마찬가집니다. 전 세계에서 몰린 취재진은 MPC에서 다닥다닥 붙은 채 기사 송고 등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책상마다 칸막이가 있지만 양 옆으로만 설치됐을 뿐 마주 보는 쪽은 없습니다. 책상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물을 마시거나 간식을 먹는 취재진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반대편에는 칸막이가 없는 겁니다.
MPC에 마련된 식당도 수많은 취재진으로 붐빕니다. 한 외신 기자가 SNS에 올린 1600엔(약 1만6000 원)짜리 햄버거 등 부실한 식단에도 취재진은 어쩔 수 없이 식당을 찾아야 합니다.(저 역시 1300엔, 약 1만3000원짜리 회덮밥을 먹었는데 회는 3점뿐이었습니다.) 수용 인원을 넘겨도 식당 출입을 막지도 않습니다. 방역 지침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식당 바로 앞 흡연 구역은 또 일정 인원만 들어갈 수 있어 나머지 취재진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럴진대 정작 가장 중요한 현장 취재는 방역을 이유로 막는 겁니다. 전 세계 취재진은 생생한 올림픽 기사를 생산하고 고국에 전하기 위해 현장을 찾습니다. 이를 위해 1인당 수천만 원에 이르는 출장비를 부담해야 합니다. 조직위가 마련한 숙소와 식당 등 시중보다 비싼 올림픽 물가도 감내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관성 없는 방역 지침으로 취재까지 제한하다니요.
올림픽에 수천 명의 취재진이 몰릴 것은 예상이 됐을 겁니다. 더군다나 도쿄올림픽은 1년이나 연기된 상황. 그만큼 준비할 시간이 더 있었던 겁니다. 사전 취재 신청을 받고 아이디 카드를 발급한 만큼 인원이나 수요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직위의 일 처리는 너무나 허술했습니다. 수개월 전부터 요청했던 취재 활동 계획서(액티비티 플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도쿄 출국 당일 새벽 입국이 불가하다는 날벼락 같은 메일을 받은 언론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계획서 승인이 나지 않은 채 당일 입국하면 14일 자가 격리를 해야 하지만 며칠 뒤에 오면 면제를 해주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메일을 보내도 한 달 후에야 확인하는 사례는 다반사. 조직위와 연락을 주고받은 기자들은 하나같이 열불이 났다고 합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막을 올린 2020 도쿄올림픽. 아직 본격적인 경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훗날 역사에 곱게 남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이없는 선수촌 시설에 분통을 터뜨리는 선수들 못지 않게 도쿄올림픽을 역사에 남길 사관(史官), 전 세계 취재진의 불만도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번 도쿄올림픽에 대한 전 세계 취재진의 논조는 무척이나 일관성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P.S-MPC에는 길게 늘어선 줄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조직위가 제공하는 택시 쿠폰을 받기 위한 줄입니다. 도쿄 입국 14일 동안은 대중 교통 이용을 금지하기에 취재진이 하루 1만 엔(약 10만 원) 정도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생각보다 줄이 줄어드는 게 더뎌 왜 그런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한참을 지나 제 차례가 왔을 때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조직위 관계자는 해당 기자에게 아이디 카드 고유 번호 등 개인 정보를 종이에 써달라면서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쿠폰 14장을 손으로 세어서 봉투에 넣어 나눠 주는 겁니다. 1명, 1명 모두 그런 과정을 거치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함께 기다렸던 후배 기자는 "미리 쿠폰을 14장씩 봉투에 넣어놨다가 주면 빠를 텐데"라며 혀를 찼습니다. 저 역시 "아이디 카드마다 바코드가 있는데 일일이 수기로 작성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본은 코로나19 지원금 신청을 우편으로 받는다는 외신을 보기만 했지 실제로 겪지는 못했는데 이번 일을 겪으니 피부로 와 닿았습니다. 조직위가 '왜 일 처리를 저렇게 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는데 정말이지 세상에 다시 없는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