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쿠바의 반정부 시위에 대외적으로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최근 일주일 사이에 세 차례나 쿠바 반정부 시위와 관련된 담화와 글이 실렸다.
지난 16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는 외부세력의 반정부 시위 개입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더니 21일 밤에는 박명국 외무성 부상 명의의 담화를 통해 미국을 콕 집어 비난했고, 22일 소식에서도 역시 미국을 정면 비난했다.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 것은 여러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일반 인민들과는 관계가 없는 외무성 홈페이지를 통해 담화와 글을 잇달아 냈기 때문에 우선 쿠바와 미국 등을 향한 대외적인 메시지를 생각할 수 있다.
쿠바 반정부 시위 관련 담화를 북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한 이유…대외 메시지
지난 16일 나온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쿠바에서 발생한 반정부시위는 사회주의와 혁명을 말살하려는 외부세력의 배후조종과 끈질긴 반 쿠바 봉쇄 책동의 산물"이라며, "이번 반정부시위를 기화로 쿠바의 사회주의제도를 전복하려는 외부세력의 내정간섭시도를 규탄 배격한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사회주의 전취물을 끝까지 수호하기 위한 쿠바 정부와 인민의 모든 노력과 조치들에 전적인 지지와 연대성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쿠바 반정부 시위에 대해 "외부세력의 배후조종"이라고 에둘러 표현하면서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 대해 강한 연대성과 지지를 표명하는 내용이다.
북한과 쿠바는 지난 1960년대 수교 이래 사회주의와 반미노선을 공유하며 각별한 우호관계를 유지해왔고, 지난 2018년에는 당시 평의회 의장이던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을 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 각종 계기에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공산당 총서기와 디아스카넬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외부세력'으로 우회비판하다 '미국 배후설' 정면 비난…인권문제 거론 주목
그런데 22일 밤에 나온 박명국 외무성 부상의 담화는 외부세력이 아니라 미국을 명확히 거론하며 비난했다.
박 부상은 "명백히 하건대 이번 쿠바 사태의 진범인, 배후조종자는 다름 아닌 미국"이라면서, "소요가 일어난 직후 미 고위층이 직접 나서서 반정부 시위를 극구 부추기고 선동한 사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쿠바의 사회주의제도를 말살해보려던 저들의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게 되자 미국은 '인권옹호'의 간판 밑에 쿠바에 내정간섭적인 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23일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도 세계 수 많은 나라의 인민들이 "미국의 간섭책동을 단호히 규탄배격"하고, "쿠바 인민의 정의의 투쟁에 전적인 지지와 연대성을 보내고 있다"며 미국을 정면 비난했다.
미국이 쿠바 시위의 '배후 조정자'임을 강조하면서 '인권문제'를 거론한 것이 특히 눈길을 끈다.
미국이 '보편적 인권문제'를 내세워 쿠바에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함으로서, 미국이 자신들에게 제기하고 있는 인권문제도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향후 대북 인권 압박에 선을 그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쿠바와 동병상련? 코로나19 속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경계심도 작용한 듯
북한의 반응에는 사실 쿠바와 미국 등을 향한 대외 메시지와 함께 코로나19 속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경계심도 묻어있는 것으로 보인다.지난 1994년 이후 27년 만에 터져 나온 쿠바 시위가 코로나19로 확대된 식량과 의약품 부족, 관광객 급감처럼 북한도 겪고 있는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발발했기 때문이다.
물론 쿠바 사태에서 북한 내 동요 가능성을 연상하는 일부의 시각은 오산이다. 다만 북한 당국도 제재와 코로나19, 무역단절 등 3중고 속에 인민들에게 경제적 성과를 제시해야 하고, 이에 실패할 경우 인민들과의 신뢰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19일 노동당 기관지 일간 노동신문과 월간 정치이론잡지 근로자 공동논설에서 "지금 국경 밖에서는 전 세계를 무섭게 휩쓰는 악성 전염병이 국가의 안전과 인민의 안녕을 위협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극복해야 할 난관들과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도 적지 않다"며, "엄혹한 시련 앞에 주저앉아 정세가 좋아지기를 기다린다면 난관은 더욱 겹쳐들고 당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심에는 금이 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노동신문은 또 21일 '혁명의 지휘성원들은 당과 인민 앞에 다진 엄숙한 서약을 결사의 실천으로 지키자'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5개년 경제계획과 관련해 "뼈가 부서지고 몸이 찢겨 가루가 되여도 일군들은 당과 인민 앞에 다진 맹세를 무조건 끝까지 지켜야 한다"며, "일군들이 당 결정을 철저히 관철하는 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존엄과 권위를 지키고 끝없이 빛내어나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혁명과업"이라고 밝혔다.
"인민 앞에 다진 맹세"인 5개년 경제 계획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당과 국가의 권위를 지킬 수 없고 인민과의 신뢰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인식인 셈이다.
임을출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쿠바는 북한보다 훨씬 자유로운 사회이고 자영업이 발전해 있는 등 상황이 크게 다른데다, 3중고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부적으로 물가와 환율 등 큰 동요가 없기 때문에 쿠바와 같은 시위 가능성은 전혀 없다"면서, "다만 먹는 문제 해결 등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북한 당과 인민의 신뢰 관계가 깨지고 인민들의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당국으로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