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상황이라 공연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가운데서도 관객이 만족감을 표현해줘서 뿌듯합니다."
지난 6일 막을 올린 코미디뮤지컬 '비틀쥬스'에서 유준상과 함께 타이틀롤 비틀쥬스로 열연 중인 정성화(46)는 관객에게 거듭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
팀 버튼의 동명영화를 무대로 옮긴 비틀쥬스는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신작이다. 이 작품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리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기술적인 문제로 개막을 2주 언기했고, 그 사이 팬데믹 4차 유행이 터졌다.
지난 21일 화상으로 만난 정성화는 "개막이 연기됐을 당시에는 공연을 못할까봐 노심초사했지만, 지금은 무대 위에서 즐기면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며 "팬데믹이라 관객의 피드백이 제한적이지만 박수 크기로 호응을 느낄 수 있다. 팬데믹이 끝나면 관객의 함성을 다시 듣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비틀쥬스 전 세계 라이선스 초연을 준비하면서 창작진과 배우진이 가장 신경쓴 부분은 현지화다. 공연 중 VIP석과 R석 사이에 낀 시야방해석, KF 94 마스크, 코로나19 검사 같은 대사가 등장할 때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정성화는 "미국식 코미디가 한국에서 통할까 의구심이 있었다. 머리를 맞대고 대사와 가사를 한국 정서에 맞게 바꿨다"며 "다행히도 관객 반응이 좋다. 마스크 속으로 웃고 있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승과 저승에 끼어 홀로 98억년을 살아온 탓에 극도로 외로움을 타는 비틀쥬스는 유령친구를 만들려고 온갖 장난을 치는 악동이다. 하지만 죽음을 꿈꾸는 소녀 리디아와 교감하면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비틀쥬스를 밉지 않은 악동으로 표현하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무겁지 않게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스스로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 됐다. "죽음도 삶의 일부인 것 같아요. 죽음을 받아들일 때 삶을 더 활력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의 메시지이기도 하죠."
팀 버튼 월드로 꾸며진 '비틀쥬스'는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거대한 집 형태의 무대 세트는 상하좌우로 접혔다 퍼졌다 하고 공중부양, 8명의 비틀쥬스 아바타 등 신기한 특수효과도 즐비하다. 머리가 쪼그라진 유령, 모래 벌레, 왕뱀이 등 거대한 퍼펫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성화는 "돌발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모든 배우가 약속된 자리에서 연기하고 노래하고 춤춘다"며 "관객은 공연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비틀쥬스의 세계에 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귀띰했다.
랩으로 표현하는 대사, 빠른 템포의 음악 등도 국내 관객에게는 신선하다. 그는 "배우 입장에서도 새로운 시도는 반갑다. 관객의 호응을 보면서 '우리나라 관객 수준이 높아졌구나' 생각했다"며 "작품의 메시지가 녹아 있는 비틀쥬스 넘버 '더 홀 빙 데드 씽'(The Whole Being Dead Thing), 리듬감 있고 가사가 재밌는 비틀쥬스·리디아 공동넘버 '세이 마이 네임'(Say my name)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비틀쥬스는 체력 소모가 상당한 역할이다. 쉼 없이 노래하고 춤춘다. 중간중간 관객에게 말을 걸고 공연을 소개하기도 한다. 정성화는 "마스크 끼고 연습할 때면 산 꼭대기에 방독면 쓰고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힘들게 연습한 덕분에 체력과 멘탈이 길러졌다"고 웃었다. "내 목소리로 3천석이 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간을 채우는 건 배우로서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동료배우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정성화는 "'이 작품은 구멍을 찾을 수 없다'는 리뷰가 가장 뿌듯했다. 어떤 배우 조합으로 관람해도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 리디아 역의 홍나현과 장민제에 대해 그는 "보석 같은 배우다. 둘 다 에너지가 대단하고 감정 연기가 섬세하다"고 엄지를 들었다. 또 "긍정 전도사 '델리아' 역의 신영숙은 기복이 없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이번 공연은 브로드웨이 현지에서도 호평받고 있다. 정성화는 "맷 디카를로 한국 프로뎍션 연출이 미국으로 돌아간 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연 피드백을 점검하고 있는데, 알렉스 팀버스 오리지널 연출에게도 칭찬받았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맨오브라만차', '영웅'과 함께 '비틀쥬스'를 출연작 베스트 3로 꼽은 정성화는 "팬데믹이 지나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8월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