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김동원과 공모해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댓글조작을 벌였고 그 대가로 해외 영사직을 김씨 측에 제안했다는 점을 모두 인정했다. 1심부터 상고심까지 내내 김 지사 측은 "킹크랩이라는 댓글 순위 조작 프로그램에 대해 들은 적도, 시연을 본 적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킹크랩 시연회 참관 뿐 아니라…텔레그램 보고 등 정황 반영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1일 김 지사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피고인과 김씨 사이에 '킹크랩'을 이용한 댓글 순위조작 범행에 관한 공동가공의 의사가 존재한다"고 밝혔다.이어 "피고인이 해당 범행에 대해 본질적으로 기여한 기능적 행위지배도 존재하므로 공모공동정범으로서 댓글조작 범행에 가담했다고 보아 유죄로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형법 제30조는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죄를 범했을 때 각자를 그 죄의 정범으로 처벌하는 '공동정범'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공동정범으로 인정되려면 △공동가공의 의사와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한 범죄의 실행이 필요하다.
이때 공동가공의 의사는 타인의 범행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제지하지 않고 용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즉,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댓글조작'이라는 범행을 위해 드루킹 김씨와 김 지사가 서로의 행위를 이용하며 자기 의사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김 지사가 손수 댓글조작을 하진 않았더라도 전체 범죄에서 지위나 역할, 장악력으로 봤을 때 단순한 공모자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며 기능적 행위지배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법원의 이같은 공범 판단 배경은 1심 판결문에 자세히 드러나 있다.
▶ 2019.1.30. 서울중앙지법 김경수 1심 판결문 주요 유죄 근거 |
◇김경수가 킹크랩 개발·사용 승인 또는 동의했는지 여부(공동가공 의사) -2016.11.9 김 지사가 경제적공진화모임(이하 경공모) 사무실을 두 번째 방문한 날 킹크랩 시연이 있었고 그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1차 버전 개발을 시작한 점 -김동원의 자백 진술 "피고인에게 '모든 책임은 제가 진다. 다만 의원님 허락이나 동의가 없다면 이것을 할 수 없으니 고개를 끄덕여서라도 허락해 달라'고 하자 피고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고인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는 경공모 회원 우모씨 진술 -김동원이 당시 '(킹크랩 개발 관련) 피고인의 동의를 받았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는 경공모 회원 박모·김모·양모씨 등 진술 -2017.1.10. 김 지사가 세 번째 경공모 사무실 방문 후 김동원이 텔레그램 채팅방에 '우리측 거사에 관련된 방해나 공격이 있을 경우 김경수가 책임지고 방어해주겠다 다짐 받음'이라는 내용 올린 점.(표현상 과장 있을 수 있지만 당시 여러 참석자가 있어 신빙성 높다는 판단) -2016.12.28. '킹크랩 완성도는 98%입니다'라는 내용의 온라인 정보보고를 받는 등 수시로 김동원으로부터 특정 기사의 댓글 반응 및 반대진영 댓글전문알바나 조작작업에 대한 동향 보고를 받은 점 ◇댓글 조작 범행과 사건 전반에 대한 김경수의 관여(기능적 행위지배) -김동원이 정기적으로 온라인 정보보고를 하고 이를 김 지사가 확인한 점 -2016년 10월부터 2018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김동원이 댓글 작업을 한 기사 목록을 매일 김 지사에게 전송하고(약 8만건) 이를 김 지사가 확인한 점. 해당 기사 목록엔 댓글작업을 한 기사의 URL뿐 아니라 '선플 선점' 등의 용어가 기재된 점 -김 지사가 김동원에게 11차례에 걸쳐 뉴스기사 URL을 보내기도 한 점. 이 때 김동원은 '처리하겠습니다' '전달하겠습니다' 라고 답변하고 경공모 텔레그램방에 전달하며 댓글작업을 지시한 점 -김 지사와 김동원의 총 11차례 만남 중 7회가 국정농단 사태 보도 이후인 2016년 11월부터 2017년 5월 대선 직후까지 기간인 점…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에서 당시 야당 국회의원이었던 김 지사가 소개받은 지 얼마 안된 지지단체를 1달에 1번 꼴로 방문하는 것이 이례적 -2017.1.10. 김 지사의 사무실 방문 후 김동원이 김 지사 보좌관과 연락해 경공모 회원 윤모 변호사가 문재인 후보 선거캠프에 합류하게 된 점 (법률인권특보로 임명) |
이러한 유죄 추론은 결국 '2016년 11월 9일 김 지사가 킹크랩 시연을 봤다'는 데서부터 뻗어 나온다. 이에 김 지사 측은 상고심까지 킹크랩 시연의 증거로 제시된 로그기록 등 디지털 증거의 증명력과 킹크랩의 본격 개발 시점 등을 두고 치열하게 반박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모공동정범의 성립에 관한 법리오해와 모순, 판단누락 등을 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2017 대선 '댓글조작' 도움 대가로 인사 제안도 인정
댓글조작의 대가로 김 지사가 드루킹 김씨 측에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공직선거법 위반은 2018년 6월 지방선거와의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다만 항소심에서 "선거운동의 대상인 후보자가 아직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운동과의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부분에 대해 대법원은 법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선거운동의 대상인 후보자가 특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장차 특정될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과 관련해 이익 제공 등을 한 경우에는 공직선거법 위반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김 지사의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 제안이 6월 지방선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특검이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해 무죄를 유지한 셈이다.
한편 2심에서는 이를 두고 "2017년 5월 대선과 관련한 보답 내지는 대가로 볼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결국 대선 당시 댓글조작의 보답으로 김 지사가 인사청탁을 받아준 것을 대법원도 인정한 셈이다. 2017년 5월 대선 관련 선거사건의 공소시효(6개월)는 그해 11월에 끝나, 김 지사가 기소된 2018년 8월에는 이미 처벌할 수 없었다.
김경수 "진실 바뀔 수 없어" vs 특검 "증거가 말한 것"
김 지사는 전날(20일) 대법원에 제출한 최후진술문을 통해 "두세 번 만난 온라인 모임과 바로 범행을 공모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며 "특검 조사 결과에도 제가 김동원과 경공모에 대해 주변에 물어보거나 사전에 조사했다는 얘기가 없다. 만나자마자 '묻지마 공모관계'가 되었다는 특검 주장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판결로 김 지사는 도정 3년 만에 불명예스럽게 지사직을 상실하게 됐다. 김 지사는 선고 후 "대법원이 내린 판결에 따라 내가 감내해야 될 몫은 온전히 감당하겠다"며 "하지만 법정을 통한 진실찾기가 벽에 막혔다고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이 진실인지 그 최종적인 판단은 이제 국민의 몫으로 넘겨드려야 될 것 같다"며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허익범 특검은 "그간 증거가 말하는 것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킹크랩 시연 참관 등 인터넷 댓글 순위 조작 관여와 공직제안 등 법원이 기소된 범죄사실 대부분을 인정한 것"이라며 "이것이 그동안 '진실을 밝혀달라'고 한 피고인에 대한 답"이라고 강조했다.
또 "어느 특정인에 대한 처벌의 의미라기보다는 정치인이 사조직을 이용해 인터넷 여론조작 방식으로 선거운동에 관여한 행위에 대해 단죄한 것이며 앞으로 공정한 선거를 치르라는 경종이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선고 이후 김 지사 측 지지자들이 허 특검을 향해 욕설을 쏟아내면서 현장이 한때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검찰은 형집행 절차를 거쳐 김 지사의 주거지 관할 교도소인 창원교도소에 2~3일 후 입감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