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닫힌 무더위 쉼터…지하철로 '폭염' 피하는 어르신들

20일 오후 종로 3가역에서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백담 기자

기온이 33도를 웃돌던 20일 오후 1시, 서울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인근을 오가는 시민들은 찜통 더위를 피해 각자 바쁜 걸음을 옮겼다. 길거리 아스팔트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차들이 내뿜는 매연이 열기를 한층 부추겼다.

같은 시각 종로3가역 11번 출구 안.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던 노인 약 20명이 대여섯명씩 짝을 지어 역 내 계단에 옹기종기 모였다. 지하철 환승통로도 이들의 차지. 몇몇은 종이 박스를 구해 바닥에 깔고 앉아 부채질에 열중했다.  

"복지관이 코로나 때문에 닫았어요. 지하철역이 제일 시원해요."

계단에 앉아 시원한 냉커피를 연신 들이키던 박홍식(82)씨는 더위가 조금씩 가시는듯 미소를 지었다. 그는 "특히 전철은 노인들이 공짜로 이용할 수 있으니 오기가 더 편하다"며 지하철역 '단골손님'을 자처했다.

서울 합정동에서 왔다는 정모(80)씨도 손 부채질에 한창이었다. 정씨는 "바깥 보다는 여기가 시원하니까 와 있다"며 "코로나 때문에 복지 시설이 문을 다 닫아서 못간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다가 가끔 청계천이 시원하다고 해서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지난 12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최고 수준인 '4단계'로 격상되면서 서울 시내 무더위 쉼터의 약 60%가 문을 닫았다. 폭염 취약계층을 위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에서 땀을 식히던 노인들은 거리로 내몰리다가 지하철역으로 모여들고 있다. 냉방이 그나마 되는 역 안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지난 12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최고 수준인 '4단계'로 격상되면서 서울 시내 무더위 쉼터의 약 60%가 문을 닫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경로당을 포함한 다중이용시설의 운영을 중단하는 모습. 연합뉴스

어르신들이 자주 모이는 탑골공원 등이 위치한 종로구는 구내 경로당, 복지시설, 주민센터 등 총 68곳에서 무더위 쉼터를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현재 각 동 주민센터(17곳)에서만 축소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원하지만 복잡한 지하철역을 피해 한적한 공원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려 하지만 이 마저도 쉽지 않다. 종로3가역 인근 종로성당 앞 공터에서 만난 표모(80)씨는 "집이 홍대 앞인데 그 근처 공원은 앉지 못하게 망으로 뒤집어 씌워 놨다"고 말했다.

다행히 종로성당 앞 공터는 그늘 밑 벤치가 마련돼 있어 노인 8~9명이 모여 햇볕을 피할 수 있었다. 표씨는 "더워서 그늘을 찾아왔다"며 "저기 옆에 큰 공원은 사람들이 워낙 모여 있어서 구청에서 한 번씩 와서 떨어져 앉으라고 한다"고 전했다.

무더위 쉼터의 닫힌 문을 바라 보다 지하철로, 공원으로 노인들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이에 따른 '풍선효과'로 방역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하철역 내에 앉아있던 한 노인은 미리 준비해 온 냉커피와 참외를 꺼내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그 과정에서 여럿이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방역당국은 무더위 쉼터 운영 중단에 따라 풍선효과가 우려된다면서도, 마땅한 대책을 내기엔 난감한 분위기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보건복지부 대변인)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노인들이 지하철 등으로 모이는 것이) 방역에 걱정스러운 상황은 맞다"면서"하지만 사적 모임은 공동의 목적을 공유한 타인들이 공동의 활동을 하는건데 더위를 피하러 나와서 (어르신들이) 어울리는 경우까지 사적 모임 위반이라고 처벌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무더위 쉼터를 닫은) 지금 상황이 오히려 방역 관리가 안되고 있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라며 "무더위를 피할 수 없는 곳들이 많기 때문에 중수본 차원에서도 무더위 쉼터를 가급적이면 운영하는 쪽으로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확진자 발생 등 방역에 위험해서 관리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곳은 지자체가 판단해서 운영을 멈추기도 한다"며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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