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나홍진 감독과 '셔터'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조합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공포 영화 '랑종'이 지난 14일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사전 시사를 통해 남겨진 후기들에서는 '무섭다' '불쾌하다' '끔찍하다' 등 다양한 반응을 만날 수 있었다.
나홍진 감독이 기획·제작하고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한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이란 뜻이다. 이 영화는 태국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을 담았다.
'곡성' 이후 극 중 일광(황정민)이라는 캐릭터의 전사를 그려보고 싶었다는 나홍진 감독은 날것과 같은 생생한 영화적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 적임자를 고민한 끝에 '셔터'로 호러 영화의 새 지평을 연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맞잡은 반종 감독이 내놓은 결과물은 태국 이산 지역의 생생한 공기와 이국적 정취에 파운드 푸티지(실제 기록이 담긴 영상을 발견해 다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표현하는 기법) 형식을 결합한 생생한 호러였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반응과 논쟁거리가 쏟아지고 있다. '랑종'에 관해 최근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에게 물었고, 이에 감독이 답했다.
◇ 나홍진 감독의 원안 받아든 반종 감독, 흥미와 중압감을 느끼다
▷ 나홍진 감독을 '나의 아이돌'이라고 표현했다. 나 감독과 함께 작업한 소감을 듣고 싶다.
- 처음 내가 나 감독님과 같이 일을 하게 됐다는 걸 알았을 때 믿어지지 않았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흥분과 긴장감이 들었다. 같이 협업을 시작하고 난 후 내가 느낀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압박감'이다. 천재 감독과 일하며 최선의 결과를 내야 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 나 감독이 태국에 와서 일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원하는 바를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좀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 '랑종'에서 나홍진 감독이 기획과 제작은 물론 직접 시나리오 원안을 집필했다. 시나리오 원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무엇인가?
- 우선 원안을 받고 느꼈던 감정은 두 가지다. 소재가 흥미롭고 재밌어서 해보고 싶었고, 동시에 중압감도 컸다. 그리고 원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드라마틱한 한 여성의 일생이었다. 이상 증상이 나타남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인상 깊었다.
이 시나리오를 받아보기 전까지는 태국 무속신앙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오랜 시간 리서치를 하면서 태국 무속 신앙에 관해 알게 됐고, 영화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한국 무속 신앙과 태국 무속 신앙에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는데, 한국에서는 무당이 때로는 카운셀러 역할을 한다. 태국에서 무속 신앙과 무당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 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러 종류의, 정말 각양각색의 무당이 있었다. 명확하게 사기꾼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지방의 조그만 마을에서 마을 사람에게 상담해주는 무당도 있었다. 정말 한국과 비슷하게 정신적인 카운셀러 역할을 해주는 것도 봤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여러 사람이 있고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있다.
▷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게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싸와니 우툼마)이 사용하는 달걀이다. 이처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도구와 의식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가져온 것인가?
- 영화에 나왔던 무속 의식이나 도구는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무속 신앙을 섞은 것이다. 영화에서 달걀을 질병 치료와 의식에 사용하는데, 이산 지역에서 실제로 무속인들이 달걀을 사용하는 걸 보고 영감을 얻었다. 또 바얀 신을 모시는 의식에서 물소를 끌고 가는 장면은 북부 지역 무속신앙에서 물소를 이용하는 것에 착안했다. 태국 무속신앙에서 받은 영감을 갖고 여러 가지를 섞어 영화 속 의식과 도구에 반영했다.
◇ 논란이 된 잔혹함…"꼭 필요한 장면만 넣었다"
▷ 극 중 밍이라는 한 여성은 온갖 끔찍하고 잔혹한 일을 온몸으로 겪어낸다. 인간의 악함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는 데 이해는 가지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 우리가 촬영하면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웠던 부분이다. 나홍진 감독과 많은 의견을 나눴다. 원안에 있는 내용에 내가 태국 무속인을 조사하면서 봤던 내용을 종합해서 장면으로 연출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꼭 필요한 장면만 들어갔고, 필요 없는 장면은 절대 넣지 않았다. 잔인함을 피하고자 CCTV로 보여주거나, 장면을 흐리게 하고, 어둡게 촬영하는 방법을 통해 굉장히 조심한 부분이 있었다.
▷ 영화의 수위를 조절하는 데 있어서 고민한 부분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 처음 우리가 생각했던 이 영화의 수위는 15세 이상 관람가 정도였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나 감독과 이야기한 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자는 거였다. 최종 목표를 여기에 두고 제작했다. 수위 조절 등에 관해서는 나 감독과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적절히 연출될 수 있도록 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선정적이거나 무섭다고 느끼지만, 실제 화면은 무섭거나 선정적이지 않도록 했다. 어둡거나 흐리게 해서 수위조절을 했기 때문이다.
▷ 영화의 리얼리티를 최우선으로 삼은 만큼 캐스팅이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고 들었다.
- 캐스팅의 전제 조건 중 첫 번째가 유명 배우를 섭외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알려진 얼굴로는 리얼리티를 살릴 수 없다고 봤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캐스팅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나리오가 어렵다 보니 실력자여야 했다. 나 감독과 논의 끝에 연극배우 중 실력자를 뽑기로 했다. 굉장히 많은 오디션을 거쳐 파워풀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했다. 캐스팅이 끝난 후 뽑힌 배우들과 워크숍을 통해 장면마다 어떻게 리얼리티를 살려서 실제처럼 수위에 맞는 연기를 할 것인가 의견을 나눴다.
▷ 이번 영화에서 스스로에게도 도전이었던 장면이나 연출 지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 내게 도전이자 어려웠던 장면은 밍에게 퇴마의식을 하는 장면이다. 그동안 엑소시즘 영화에서 보면 기독교적인 장면이 많았다. 이번엔 태국 스타일의 엑소시즘을 연출해야 했고, 또 연출된 것 같지 않고 실제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느꼈다. 다행히 밍 역할을 해준 배우 나릴야 군몽콘켓의 캐스팅 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배우가 정말 잘 연기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이 영화에서도 잘 표현된 것 같다.
▷ 극 중 마지막 님의 인터뷰 영상이 많은 관객에게 충격을 전해줬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해당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 나에게나 나홍진 감독에게나 엔딩은 어떤 의미다, 어떤 내용으로 끝난다고 결정하고 찍은 건 아니다. 우리가 원했던 건 마지막에 이르러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관객들이 영화의 엔딩을 통해 본인이 가진 악, 원죄 그리고 본인의 신앙이나 믿음에 대해 의심을 품고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지고 살았던 믿음이나 신앙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관객들도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랑종', 자신이 가진 믿음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영화"
▷ 이전에 연출한 호러 영화들과 '랑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차이점이 굉장히 명확하다. 그동안 내가 만든 공포 영화는 픽션이었다. 빠른 전개와 지금 장면을 통해 앞으로 나올 장면의 전개를 알 수 있고, 공포감을 계속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반면 '랑종'은 그런 픽션이 아니라 서서히 영화의 분위기에 젖어 들며 공포감을 느끼고, 마지막에는 생각할 수 있는 영화다. 본인의 믿음 등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 감독이 생각하는 공포 영화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그리고 공포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어떤 무서움을 그려내고 싶나?
- 공포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공포심이다. 공포 영화를 만드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공포 영화에서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유에서 나도 공포 영화를 보고 무섭다고 느끼지 못하기에 공포 영화를 싫어하고 안 보게 됐다. 나홍진 감독이나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로운 시대에 나오는 새로운 공포 영화는 예전과 차별화돼야 한다. '랑종'은 서서히 공포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게 제작자로서 큰 도전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내게 매우 큰 의미가 있다.
▷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 태국 사람들의 경우는 많은 믿음과 신앙이 혼재해 있다. 나 감독과 '랑종' 관련해 의견을 모았던 게, 기존 공포 영화처럼 공포만 주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본인이 알고 있던 믿음, 악에 대해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인사해 달라.
- 우선 이렇게 한국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나도 긴장되고 흥분된다. 영화에 비밀스러운 요소가 많다 보니 이미 영화를 본 분들은 스포일러를 자제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