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정권 수사 피의사실 공표에만 '발끈'…기준 구체화는 '되풀이'에 그쳐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법무부·대검 합동감찰 결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 직접 발표
검찰의 '불기소 결론' 뒤집는 새 혐의점 내놓진 못해…'피의사실 유출 방지'에 초점
검찰 내부 "이미 공심위 열어 공개 범위 구체화, 권력 수사 재갈 물리려는 취지" 비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4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피의사실 공표 방지 방안 등을 포함한 검찰 수사관행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대한 합동 감찰 결과 새로운 혐의점을 내놓진 못했다. 다만 검찰의 해묵은 문제로 꼽히는 '피의사실 유출 방지'에 초점을 두고 구체화 요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검찰이 단계적으로 개선하고 있었던 사항이라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감찰 결과는 지난 3월 한 전 총리의 모해위증(남을 해할 목적의 위증) 교사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혐의가 없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당시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대검 부장·고검장 확대회의에서 나온 '불기소 결론'을 받아들이는 대신 고강도 합동감찰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박 장관은 이날 합동감찰 결과를 직접 발표하며 당시 수사팀의 모해위증 교사 의혹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박 장관은 "모해위증 혹은 모해위증 교사의 실체적 혐의에 대해 이미 대검이 절차적 과정은 아쉬우나 제가 한 수사지휘에 따라 결론을 내린 바 있다"면서 "이번 합동감찰에선 모해위증, 모해위증교사의 실체적 규명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4개월 만에 대검의 결과를 받아들인 셈이다.

박 장관은 대신 한 전 총리 사건을 토대로 검찰의 수사 관행이 얼마나 부적절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 지금은 대권후보로 떠오른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주임검사를 지정하는 방법으로 업무 담당자를 교체해 '제식구 감싸기' 의혹을 자초했다고 지적하며 검찰과 윤 전 총장을 모두 겨냥했다. 또 한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참고인을 검찰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반복 소환'과 '증언 연습'이 있었다는 의혹도 감찰 과정에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피고인에게 유리하거나 공소 유지에 불리한 참고인들의 진술을 듣고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됐다. 다만 이날 감찰 결과는 모두 지난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 가운데 일부에 대해 '재확인'한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가장 강조된 부분은 '피의사실 공표 기준의 구체화'였다. 박 장관의 표현대로 '엄청난 피의사실 유출' 있었다는 점이 한 전 총리 사건 감찰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에 이를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개선사항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공소 제기하기 전에 예외적으로 공개 범위를 구체화하고, 수사 단계별 공개 범위에 관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또 △피의자의 반론권을 보장하고, △인권보호관에게 수사상황이 유출됐을 경우 진상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현재도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공심위)를 열어 공소 제기 전 공개 범위를 구체화하고 있는데 이를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 지청의 검찰 관계자는 "보도자료를 낼 때도 공심위를 다 거치고 있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라면서 "권력 사건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만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 합동 감찰 결과에서 나온 피의사실 공표 기준 구체화는 권력 수사에 있어 재갈을 물린다는 취지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피의사실 공표 기준이 흠결을 보완하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균형 감각을 잃고 국민의 알 권리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박 장관이 악의적 피의사실 유출에 대해서도 엄단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앞으로 권력비리 수사 등 정권 관련 수사는 깜깜이 수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요즘 검찰 수사 관련한 보도는 검찰발(發)이 아니고 피의자 측 변호인발 기사가 대부분"이라면서 "변호인이 피의자를 방어하기 위한 논리가 흘러나오며 검찰 수사 내용까지 겹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검사는 피해자의 국가적 대리인으로서 소송을 제기하고 수사하는 것인데 입이 틀어막히는 건 피해자의 입이 틀어막히는 것과 다름 없다"며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가 대변할 지도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가 실상은 면피성으로 운영되는데 과도한 권한을 주는게 아니냐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 검찰 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는 기소 이전의 문제이기 때문에 기소 이후엔 공심위를 열 필요가 없는데도 일선에선 감찰에 하도 시달리다보니 공심위를 소집한다"면서 "요식행위처럼 되어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공심위는 그 동안 있었지만 지침으로 돼 있어 명확한 기준이라고 하기 어려웠다"면서 "이를 훈령으로 즉시 개정해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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