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정치판 보는 듯하네…코리올라누스

LG아트센터 제공
지난 3일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연극 '코리올라누스'는 홍콩 느와르 영화 느낌이 물씬했다. 무대는 흑백 지하 벙커로 꾸며졌고 배우들은 무채색 의상을 착용했다. 등장인물의 입장과 욕망에 따라 무대는 냉정과 열정을 오갔다. 총과 칼, 맨몸이 부딪히는 전장이 됐다가 각종 음모와 선전이난무하는 의회와 토론장이 됐다.

'코리올라누스'는 셰익스피어가 남긴 마지막 비극이다. 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복귀한 셰익스피어 스페셜리스트 양정웅(2018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 총연출가·극단 여행자 예술감독)이 격동기 로마 시대 이야기에 현대적 색채를 입혀 동시대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이번 작품은 양정웅의 8번째 셰익스피어 연출작이다.

작품의 배경은 기원전 5세기다. 공화정 체제 전환을 앞둔 로마는 밖으로는 볼스키족 등 외세의 위협에 시달리고 안으로는 식량난, 폭동, 귀족과 평민의 대립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다. 안팎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 전쟁에서 볼스키족을 격퇴하고 로마를 구한 장군 코리올라누스는 일약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다.

용맹하고 청렴결백하며 효심까지 깊은 코리올라누스는 최고 권력인 집정관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바친 로마에서 그는 추방당한다. 그를 시기한 호민관(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시민 중에서 선출한 관직)의 음모 때문이다. 코리올라누스에 대한 민중의 환호성이 커질수록 호민관들은 그의 권력이 더 커질까봐 불안감을 느끼고, 민중을 선동해 그를 로마에서 내쫓은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코리올라누스의 오만함이다. 코리올라누스는 집정관을 선출하는 관례에 따라 시민들의 찬성표를 얻기 위해 광장으로 향한다. 공적을 내세우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아도 정치인답게 과장된 제스처를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그는 시민들을 퉁명스럽게 대했고 이러한 언행은 시민들의 불만을 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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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올라누스는 민중들에게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볼스키군을 이끌고 로마를 침략해 혁혁한 공을 세운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죽음이다. 그가 승승장구하자 이번엔 볼스키의 장군 오피디우스가 자신의 권력이 위축되는 것을 염려해 코리올라누스를 살해한다.

로마에서도, 적국 볼스키에서도 버림받은 코리올라누스의 비극적 삶을 다룬 이 작품은 보는 관점에 따라 그 이유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는 예나 지금이나 민중을 존중하지 않는 지도자는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영국왕립연극학교에서 유학한 후 4년 만에 국내 무대에 복귀한 남윤호가 타이틀롤 '코리올라누스'를 연기했다. 또렷한 발성과 군더더기 없는 연기가 일품이다. 임일진(국립오페라단 미술감독)이 무대 디자인, 밴드 '이날치'의 리더인 장영규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내년 마곡으로 이전하는 LG아트센터 역삼동 시대 마지막 기획공연이다. LG아트센터에서 7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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