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고 앉아 무언가를 같이 보고 있는 두 여인의 뒤로는 비현실적인 제주도의 오름이 창 너머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름 주변을 걷는 젊은이들의 뒷모습이 경쾌해 보인다.
서상익(44)의 작품 '윤주와 지현', 실제 작가의 동료인 이들이 청와대 사랑채에서 앉아있던 모습에, 마치 무대처럼 제주도 아구오름으로 배경을 바꿔 재구성한 작품이다.
전시 기간 개인전 'Cold on a Warm Day'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성수동 아뜰리에 아키에서 만난 서상익은 "사진적 이미지가 아닌 공간을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제주도 오름이라는 다른 공간을 배경으로 넣었더니 자유롭고 재밌게 어울리더라"며 "고정관념을 버리고 과감하게 벗어났다"고 전했다.
그들의 발 밑에는 형형색색의 모자이크처럼 색들이 총총히 박혀있다.
그림 속 인물들의 밝은 표정이 생생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두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타인을 향한 관심과 경계심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가는 일상 속 '거리두기'에 대한 서사를 담아낸 20여 점의 페인팅 작업과 드로잉 신작을 볼 수 있다.
초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를 한데 모아 보여줌으로써 그의 작업 변천사를 조망할 수 있다. 작업 초기의 사진적 표현에서 나아가 점들로 쌓아 올린 면, 단순화된 선, 디테일이 생략된 공간 등의 변화된 표현 방식을 통해 그림을 구성하는 조형 요소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고찰을 확인할 수 있다.
서상익은 지난 2008년 첫 개인전이 완판을 기록하며 단번에 주목받는 작가가 됐지만 10년 가까이 방황기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동안 폐기한 그림이 셀 수 없이 많았다"며 "왜 작업이 괴로운 일이 됐을까? 계속 고민하다 '오만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변화의 욕구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모른채 이렇게저렇게 해보다가, 무언가를 바꿔서 좋은 작업을 하게 될 거라는 '오만함'이 참 불손하구나 깨닫게 됐다.
그는 "오늘 하루로 이 길을 평가하지 말자, 호흡을 길게 천천히 가자, 하루하루에 좌우되지 말자"하며 "'오만함'을 던지니 편안해지고, 작업이 재밌는 일로 바뀌었다"며 웃어보였다.
서울대와 같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한 서상익은 모더니즘적 도시 풍경과 사실적으로 표현된 인물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선보여왔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광주시립미술관, 하나은행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1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