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금지법 시행 2년에도···"사내 괴롭힘 경험" 33%

'심각 수준'도 33%···영세사업장·젊은층·저임금일수록↑
가해자 약 10%는 법안적용 안 돼···68% "참거나 모른척"

#1. "'5인 미만' 기업에 입사해 수습기간 통과 후 정규직으로 일하다 부당해고를 당했습니다.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을 몇 달 동안 당하면서 참기가 어려워 대표에게 보고했지만, 대표는 신고 이튿날 바로 저를 해고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해고, 신고를 이유로 한 불이익 조치 등 모든 것이 다 위법사항이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것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노동청에 신고도 했었지만, 이같은 이유로 각하 처분을 받았습니다."
 
#2. "지난 2019년부터 회사 대표로부터 성희롱과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당했습니다. 이에 법과 절차에 따라 회사 대표를 신고했지만, 사측은 제대로 된 조사절차 없이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저는 고용노동부에 진정 신고를 했고 수개월의 조사 결과 괴롭힘과 성희롱이 인정돼 회사에 시정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후 회사나 대표로부터 휴직 거부, 형사고소, 무급휴직 연장, 대기발령, 징계위원회 회부, 해고까지 불리한 처우와 '2차 가해'의 피해를 그대로 받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갑질금지법)이 시행된 지 만으로 2년이 돼가지만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사내 갑질'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 제공
11일 직장갑질119는 공공상생연대기금과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직장인 1천명을 상대로 실시한 '갑질 감수성 지표 및 직장 내 괴롭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10~17일 온라인으로 이뤄진 이번 조사는 △갑질 감수성 △갑질금지법 △노동조합에 대한 이들의 의견을 파악하고자 진행됐다.
 
지난 1년간 직장에서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32.9%로 '3명 중 1명' 꼴로 나타났다, 이는 직장갑질119가 같은 내용으로 진행한 지난해 9월(36%)→지난해 12월(34.1%)→올 3월(32.5%)의 조사결과와 비등한 수치다. 
 
직장생활을 하며 '갑질'을 당했다고 답한 응답자(329명) 중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이들 역시 33.1%에 달했다. 특히 피해수준이 심하다고 답변한 비율은 사업장 규모가 영세할수록, 연령대가 비교적 젊은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더 높은 경향을 보였다. 
 
직장갑질119 제공
구체적으로 '5인 미만' 사업장(52.1%)이 '300인 이상' 기업(32.8%)보다, '월 150만원 미만'을 받는 근로자들(37.5%)이 '월 500만 이상'의 고소득자(19.5%)보다, 20대 직장인(39.3%)이 '관리자'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50대 (29.3%)보다 적게는 10% 가량에서 많게는 20% 가까이 높았다.
 
가해자로 가장 많이 지목된 대상은 '임원이 아닌 상급자'(44.1%)였다. 이어 △대표·임원·경영진 등 '사용자' 23.4% △비슷한 직급의 '동료' 21% △고객이나 민원인, 거래처 직원 4% △원청업체 관리자 및 직원 3% △사용자의 친인척 2.4% △하급자 2.1% 순으로 파악됐다. 
 
이 중 고객이나 원청 관계자, 사용자 친인척 등 현행법 상 적용범위에서 벗어나있는 가해자가 9.4%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갑질119는 "지위 우위가 막강한 원청이나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을 하는 입주민은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니고, 사용자의 친인척도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한계로 인해 갑질을 당한 이후 적극 대응에 나서는 노동자는 드물었다.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 중 68.4%는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또는 동료들과 항의'(30.7%)했다고 답한 이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퇴사'(19.5%)를 선택한 비중도 적지 않았다. 
 
'회사·노동조합에 신고했다'(2.4%)거나 '고용노동부·국가인권위원회·국민권익위원회 등 관련기관에 신고했다'(3%)는 응답 또한 매우 저조했다.
 
신고 자체를 하지 않은 이들은 그 이유로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62.3%)고 답했다.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거 같아서'라는 응답도 27.2%였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119는 "사용자의 친인척도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라며 "이에 앞서 고객, 원청, 사용자 친인척의 갑질은 노동청에서 신고를 받고 직장 갑질이 '재발'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특별근로감독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장갑질119 제공
다만, 사내 갑질에 대한 직장인들의 감수성은 약간 높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 2019년 68.4점이었던 '직장갑질 감수성 점수'는 지난해 69.2점에 이어 올해 71점으로 소폭 올랐다.
 
항목별로는 모두가 '괴롭힘'으로 인식할 만한 전통적 갑질이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폭언'(84.8점)과 '모욕'(83.4점)이 상위권을 차지한 가운데 △임금체불(81.1점) △병가(79점) △업무 외 지시(78.6점) 등이 뒤를 이었다. 
 
다만, 아직 평균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영역들도 있었다. 회사 대표나 상사가 시킨 '불합리한 지시'(56.9점), 맡겨진 일은 시간 외 근무를 해서라도 끝내야 한다는 '야근'(56.7점)이 대표적 예다. 아울러 △'어린 아이를 키우는 육아직원의 편의를 봐줘야 한다' 56.6점 △퇴사('갑자기 일을 그만둔 직원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54.1점 △'일을 못하는 직원'에 대한 권고사직 52.6점 등이 상대적으로 다소 점수가 낮았다. 
 
직장인의 절반 이상(65.2%)은 지난 2019년 7월 16일부터 갑질금지법이 시행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법안 시행이 실제 갑질 감소에 기여했다는 응답은 53.3%에 그쳐 '줄어들지 않았다'(46.7%)와 거의 비슷했다.
 
오는 10월부터는 '갑질'을 한 사용자에 대해 과태료 1천만원, 사건 조사나 가해자 징계 등 피해자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500만원 등을 부과하는 개정법안이 시행될 예정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미비하고 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딱히 이를 제재할 방안이 없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온 탓이다.
 
직장갑질119는 정부가 이러한 개정안의 내용을 회사들과 직장인들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갑질119 권두섭 변호사는 "대표적인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갑질금지법을 적용해야 한다.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하면 바로 가능하다"며 "또 예방교육을 의무화해 인식변화와 조직문화가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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