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재건축 단지 상당수가 안전진단 관문을 넘지 못하고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택 공급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8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국토안전관리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현재까지 49개 단지의 재건축 안전진단 적정성 검토가 완료됐거나 진행 중에 있다.
이들 단지는 앞선 민간 정밀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D등급) 판정을 받아 공공의 심사가 추가로 필요한 곳이다.
하지만 적정성 검토결과 '적합' 인정을 받은 곳은 양 기관을 합쳐 14개 곳(약 28.5%)에 불과하다. 10곳 중 7곳은 공공 심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다.
"공공과 민간이 각각의 영역에서 주택 공급을 확대하면 된다"는 정부의 구상에 민간이 '시큰둥'한 이유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의 한 노후 아파트 단지 관계자는 "적정성 검토에서 미끄러지면 다시 지자체 현지조사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우리 단지의 경우 민간 안전진단 전문기관 용역 비용만 수억 원을 또 들여야 하는 것"이라며 "주민 분담금 문제 등으로 사실상 진행이 '스톱' 상태"라고 말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2018년 3월 '재건축 안전진단기준 정상화'를 기조로 구조안전성 등에 힘을 실은 기준 강화를 추진했다.
당시 국토부는 "현재 안전진단은 사업 추진 필요성을 결정하는 본래의 기능이 훼손되고, 형식적인 절차로만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 시장 과열과 맞물려 재건축 사업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추진돼 많은 사회적 자원 낭비와 사업에 동의하지 않은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안전 중심의 본래 취지'뿐만 아니라, '재건축 남용 방지'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안전진단은 일부 민간 전문기관에서 조건부 재건축(D등급) 판정이 나온 경우 공공기관의 적정성 평가를 받도록 했다.
평가항목별 가중치도 조정해 구조안전성 비중을 20%에서 50%로 높이는 반면 주거환경 비중을 40%에서 15%로, 시설노후도를 30%에서 25%로 낮췄다. 지난해 6월엔 적정성 검토 시 현장조사를 의무화하는 등 추가적인 제도 보완도 이뤄졌다.
재건축 안전진단 검사가 까다로워지면서 결과적으로 개별 단지들은 재건축 추진의 첫 문턱을 넘기가 만만찮아졌다.
지자체에서는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앙정부는 규제완화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지난 5일 기자 간담회에서 "민간 정비사업 추진의 전제조건은 주택시장 안정"이라며 규제 완화와 관련해 그간의 유보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현재 서울 주택시장은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상승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넷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0.12%를 기록했다.
특히 서초구(0.17%)는 반포·서초동, 강남구(0.15%)는 개포·대치동 재건축 단지 위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노원구(0.26%)는 중계·상계동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서울에서 12주 연속 가장 높은 상승률을 이어갔다.
부동산원은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등 영향으로 매수세가 축소됐지만, 재건축 등 규제 완화 기대 지역에서 호가가 높게 유지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재건축이 크게 늦어지거나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추가 공급에 따른 아파트 가격 진정이란 효과는 빛이 바래고, 호가만 계속 높아질 것이란 우려를 제기한다. 정부 입장에서 볼 때도 향후 재건축 추진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부동산인포 권일 리서치팀장은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뛸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부담 요인일 수 있다"면서도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재건축이 결국엔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발 이슈'만으로 지나친 가격 상승세가 계속되는 게 오히려 나중에 더 큰 부담을 쌓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